NEW SUCCESS

성공의 진화

멘토를 찾아서 #3 멘토 알버트 리(Albert Y. Lee)|멘티 김인수(Insoo Kim)

세상을 담아내는 천재 디지털 비디오 프로듀서


멘토 알버트 리는 자신의 사원증을 스캔하며 멘티 김인수를 엘에이 타임스(LA Times)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건물 복도에는 신문의 지면이 유리관 속에 진열되어 있었다. 하나의 기사가 멘티 김인수의 눈을 사로잡았다. 김인수의 시선을 사로잡은 기사 하나가 있었다. 알버트 리에게 물었다. "이 기사가 정말 타이타닉호 침몰에 관한 건가요?"
엘에이 타임스빌딩의 한쪽에는 사람, 전쟁, 장소, 사건 등에 관한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다. 모든 사진은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담고 있었다. 이윽고 화려한 상장들이 진열된 유리 전시장이 나타났다. 알버트 리는 가볍게 금색 조각상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갱 폭력 희생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프로젝트로 우리가 받은 에미상(Emmy)이에요."
알버트는 겸손하게도 그가 이뤄낸 막대한 양의 프로젝트나 수상 경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멀티미디어 제작자와 사진작가라면 거듭 반복해서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삶을 살라고 멘티 김인수에게 조언했다.
김인수 :
저는 동아방송예술 대학에서 방송보도제작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미디어계에 종사하려면 해외를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현재 UCLA에 교환 학생으로 왔습니다. 제가 미국에 간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처음엔 걱정하셨어요. 하지만 끝내 허락해 주셨습니다. 알버트 씨는 어렸을 때 가족들과 관계가 어떠셨나요?
알버트 리:
제 부모님은 작은 비즈니스를 하셨어요. 열심히 일해서 우리를 키워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를 돌봐주실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여름에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나 도서관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에겐 좋은 경험이었어요. 부모님으로부터 근면함을 배웠습니다. 또 부모님의 사업성장 과정과 희생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김인수 :
저도 부모님이 저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시지만 아직까지 왜 방송학 공부를 위해 미국땅을 밟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세요. 알버트씨의 부모님은 사진학 공부를 지지해 주셨나요?
알버트 리:

어린 시절 저는 참 말하기를 좋아했어요. 부모님은 제가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전 진작에 제 열정은 사진에 있다는 걸 알았죠. 고등 학생 때 사진 수업을 들었고 부모님께 꽤 큰 투자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컴퓨터 한 대와 좋은 카메라 하나를 사달라고 했어요. 정말 비쌌는데도 부모님은 제가 원하는 것을 사주셨습니다. 저는 그게 얼마나 큰 희생인지 알아요. 사실 우리는 브랜드 옷, 소위 이름있는 옷을 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수천 달러를 저를 위해 쓰신 거예요. 저에겐 너무 행운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진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은 입으로는 계속 변호사가 되라고 하셨지만, 간접적으로 저를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신 거죠.

인수씨가 한 이야기와 비슷해요. 비록 인수씨 부모님이 당신을 지지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절대 인수 씨를 생각해주시지 않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걱정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기 때문입니다.

김인수 :
사진의 어떤 점에 알버트씨가 매료됐나요? 사진을 다루는 직업이 보편적이지는 않잖아요. 특히 예전에는 더욱더. 사실 지금도 한국 부모님들이 쉽게 허락할 만한 직업은 아니고요. 저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알버트 리:
미국에서 한국인 2세로 자란다는 건 이해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집에서는 한국문화, 학교에서는 미국문화를 같이 수용하며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통해 저는 창의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었고, 사진은 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었죠. 동시에 제가 사는 세상을 알게 해주고 탐구하도록 도와줬습니다.
김인수 :
솔직하게 저는 카메라와 녹음기를 다루면서 하찮게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제 가족들도 종종 저에게 제가 하는 일은 직업이 아니라 취미라고 말씀하셨죠. 사진가로서 힘든 일은 없었나요?
알버트 리:
이중으로(양면으로) 힘들었습니다. 창의적인 사진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시간 동안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죠. 또 부모님은 제가 평범한 직업을 갖기를 원하셔서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도 한몫했습니다. 고객과 편집자들도 제 작품을 항상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건 아니니까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김인수 :
저도 미래에 사람들에게 가치 있고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습니다. 알버트씨는 수많은 수상경력이 있으시고, 또 32번째로 뉴스와 다큐멘터리 부문 국제 에미 상을 받으셨죠. 독특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성공의 열쇠를 찾으셨는지 말해 주실 수 있나요?
알버트 리:

고등학생 때 제가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전문 커스텀 프린터, 인물 사진작가, 졸업앨범 사진작가, 상업 사진작가 등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패션 사진작가도 했죠. 그 이후에는 포토샵을 배웠습니다. 결국엔 그게 LA타임스에 입사할 수 있었던 자산이 되었죠.

저는 신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토샵을 다루는데 매우 일가견이 있었죠. 결국, 저는 LA 타임스에서 첫 번째로 멀티미디어를 담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무언가에 열정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하세요. 당신이 원하는 일을 진실성 있게 밀고 나가세요.

김인수 :
LA 타임스에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 얼마나 오래 일하셨나요? 디지털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프린트된 신문은 변화가 필요했는데, 어떻게 한 발자국 먼저 디지털 분야를 선택하셨나요?
알버트 리:

저는 18년 동안 LA타임스에서 근무했어요. 2004에서 2005년에는 멀티미디어를 담당했고 점차 영상으로 바꿨습니다. 언론 업계가 변화하면서 저도 영상을 편집하고 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변화와 시련이 있었지만, 또 그만큼 많은 기회도 있었습니다. 제 부모님은 그들의 삶을 가꾸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그리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생계를 꾸리셨습니다. 부모님은 사업가였습니다. 저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창조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제 삶을 살게 됐습니다.

김인수 :
알버트씨에게 처음으로 가장 큰 돌파구( breakthrough)는 무엇이었나요?
알버트 리:

가장 결정적인 기회를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만, 상업 사진 스튜디오에서 큰 고객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한 것이 도움됐습니다.

LA타임스에서 처음 들어갔을 때는 제 이름도 없었어요. 저는 보조 사진작가였죠. 하지만 제가 한 작업을 통해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포토샵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에는 다양한 레벨이 존재합니다. 큰 캠페인을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스토리에 감명받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저에겐 또 다른 성공이었죠.

김인수 :
알버트씨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알버트 리: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계세요. 명예롭게 생각하세요.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어도 당신이 누구인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제 부모님의 아들이고 부모님은 한국인 이민자입니다. 저는 특정한 문화와 관념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저는 그러한 생각들을 제 시대에 맞추어 적용했습니다. 근면, 창의성 그리고 부모님의 감정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제 일과 직업에서 열정과 느낌을 더해 나타냈습니다.

김인수 :
LA 커뮤니티가 변화해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인들을 위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알버트 리:

제 관점에서는 좋습니다. 사람들이 문화를 잘 수용하면 좋겠어요. 한인 타운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만들어집니다. 굉장히 큰 잠재력이 있으므로 한국인들이 다양한 문화를 잘 수용하고 현시대에 맞게 적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은 잘할 수 있습니다. 핑크베리, 로이 최 같이 한국인으로서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유명한 음식 평론가 조나단 골드도 한국 음식을 칭찬했습니다. 한국 영화 산업도 발전하고 있고요.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를 잘 알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제 희망은 이 특별한 한국 문화와 커뮤니티가 널리 알려지고 지속하는 것입니다.

김인수 :
제 부모님은 종종 제가 하는 일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세요. 저는 영상 편집을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부모님이 봤을 때 저는 그저 컴퓨터를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알버트씨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런 관점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특히 자식이 특정한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 부모님일 경우에요.
알버트 리:
저도 인수씨 마음 이해합니다. 한때 제 아버지와 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한 방향으로만 소통하려고 했습니다. 아마 제 아버지는 그저 제가 잘하고 있는지 알고 싶으셨을 거예요. 굳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이 흥미 있는 분야를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고 보여드린다면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라도 부모님은 다 이해하실 겁니다
김인수 :
미술계나 인문학은 굉장히 힘든 분야인데, 알버트씨와 같은 직업을 갖기 원하는 이들을 위해 해줄 조언이 있다면?
알버트 리:

너무 한국적인 충고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항상 새롭고 영향력 있는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길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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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도요타 코롤라는 성공을 향한 여러분의 여정에 늘 함께 해왔습니다.
나만의 특기, 나만의 장점, 그리고 나만의 목표를 위해 멈추지 않고 달리는 이들, 성공의 고정관념을 깨고 끝없는 변화와 도전으로 앞장 서 나아가는 차세대 리더의 모습은 도요타 코롤라가 추구하는 정신과 같습니다. 도요타는 자기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리더들과 그 길을 따르는 미래의 꿈나무들을 응원합니다.

새로워진 2017년형 코롤라와 함께 당신만의 길을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