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UCCESS

성공의 진화

멘토를 찾아서 #4 멘토 안나 수(Anna Su)|멘티 샐리 송(Sally Song)

끝없는열정이 성공을 만든다 – 스타일리스트 안나 수


브로케이드 자켓과 실크 트라우저를 꺼내드는 프리랜스 스타일리스트 안나 수 (Anna Su)는 90년대 패션계를 주름잡았던 미국 탑 모델을 위한 옷을 고르고 있다. 꼼꼼하게도 안나 수는 그녀의 맨티 샐리 송(Sally Song)에게 쇼핑의 전반적인 과정과 모델이 원하는 옷을 고른 이후의 과정까지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멘토 안나는 설명했다.
"스타일링이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엄격한 규율과 고된 작업이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샐리송:
저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자면,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캐나다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후 공부를 더 하기 위해 LA로 왔습니다. 텍사스주에서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안나수:
저는 텍사스주의 롱뷰(Longview, Texas)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곳은 다양성이 부족한 아주 작은 타운입니다. 제가 12살 때 세븐틴 매거진(Seventeen Magazine)을 읽었어요. 접혀진 한 페이지 속에서 패션 디자이너 안나수이 (Anna Sui)에 관한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 순간, 패션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어요.
샐리송:
저희 부모님은 쥬얼리를 디자인하시고 세공을 하시는 사업을 하십니다. 두 분만의 디자인으로 쥬얼리를 만드십니다. 패션을 행한 당신의 열정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나요?
안나수: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드레스를 입는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나요. 저희 어머니는 굉장히 화려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드레스를 보며 옷은 하나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의적일 수 있었죠.
샐리송:
당신의 가정환경은 어땠나요?
안나수:
제 가정은 전통적이면서 엄격했습니다. 어머니는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중국인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의 기념일을 모두 챙깁니다.
때때로 다른 언어 때문에 의사소통하는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 많은 것을 알아내야 하기도 했습니다.
두 분 모두 강조하셨던 한가지는 바로 교육이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중요했죠.
샐리송:
당신은 텍사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땠나요?
안나수: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미국인도 아니었을뿐더러 한국인과 중국인 중에서도 어느 쪽도 아니었으니까요. 항상 아웃사이더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샐리송:
당신은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죠?
안나수:
노스텍사스대학교(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샐리송:
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나요? 저도 어렸을 때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결국에는 패션 디자인보다는 디자인 자체에 더욱 매력을 느꼈습니다.
안나수:
저에게 패션 디자인은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입니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경쟁이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다잡으며 창의적이고 새롭고 혁신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옷은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샐리송:
당신의 부모님이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는 것을 허락하셨나요?
안나수:
부모님은 별로 성공을 믿어주시지 않았습니다. 패션 디자인 공부가 얼마나 성공적인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확신이 없으셨죠. 지금도 제가 하는 일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하시지만, 부모님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응원해 주시고 지원해 주십니다.
샐리송:
저는 캐나다에서 LA로 올 때, 조금 겁이 났습니다. 당신은 텍사스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는데, 뉴욕으로 어떻게 가게 됐나요?
안나수:
정말 큰 문화 충격이었어요! 저는 항상 뉴욕의 삶을 꿈꿨습니다. 세계적인 수도 말이에요. 뉴욕은 항상 책이나 영화에서 미국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제 아버지도 70년대에 4년간 뉴욕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뉴욕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세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크리스천 조이(Christian Joy)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샐리송:
마크 제이콥스와 크리스천 조이에서 인턴십은 어땠나요?
안나수:

마크 제이콥스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였죠. 고등학교에서 그에 대해 배웠어요. 마크 제이콥스와 일을 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패션 위크를 진행하면서 일하는 사람들 전부 오버타임, 더블타임으로 일합니다. 인턴십을 통해 패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 모두의 패션을 향한 열정은 저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마크 제이콥스는 최고의 디자이너팀을 보유하고 있고 숙련된 기술자들과 같이 일합니다.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패션을 배웠다는 것이 그저 기쁠 뿐이에요.

또 다른 인턴십은 크리스천 조이(크리스티안 헐트퀴스트)에서 했습니다. 그녀는 독학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와 경계선 없는 DIY 펑크를 창조했습니다. 그녀의 관점이 담긴 디자인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녀는 진정한 순수 비주얼 아티스트예요. 그녀의 디자인은 굉장히 자유롭고 어느 기업이나 회사에 맞춰서 창조되지 않습니다.

샐리송:
당신은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스타일링 분야로 가셨죠. 바꾸는 과정이 어땠나요? 저는 당신이 패션 디자인에서 스타일링 분야로 옮긴 것에 대해 굉장히 궁금합니다. 저도 비슷하게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디자인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쥬얼리 디자인을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안나수:
인턴십을 하면서 저는 크리스티안에게 스타일링에 흥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타일링에 관심은 많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 분야인지 몰랐었죠.
크리스티안은 조수를 필요로 하는 한 스타일리스트에게 저를 소개해줬습니다. 그때부터 급속도로 진전되기 시작했어요. 다른 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면서 패션 디자인보다 훨씬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제가 원하던 방향이었고 후회는 없습니다.
저는 프리랜서 스타일 리스트 입니다. 그래서 인턴십을 마친 이후로 한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한 적 없습니다.
샐리송:
당신의 가장 큰 돌파구는 무엇이었나요?
안나수:
한순간을 콕 집어서 말하기는 힘듭니다. 이 직업을 갖기까지 수많은 사건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2006년부터 스타일링을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2013년에 LA로 와서 제 에이전트인 MarjoleinSopjes와 계약한 것이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샐리송:
당신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잖아요. 광고, 영화, 에디토리얼 분야까지 일한 경력이 다양한데, 스타일리스트로서 이런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안나수:
이러한 경험은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유연함과 창의성을 의미합니다. 스타일 리스트는 분야에 따라 다양함을 만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에디토리얼계는 광고계보다 뚜렷하고 분명한 디자인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알맞게 적용하는 능력은 필수예요.
스타일 리스트의 경험을 통해 저는 여러 분야의 경험을 쌓았어요. 그런 경험들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샐리송:
당신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제 눈에 띄는 것은 타임스퀘어 길거리의 설치 미술 장면이에요. 어떤 환경에서 작업하셨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안나수:
설치 미술은 제 친구이자 포토그래퍼인 저스틴 베트먼(Justin Bettman)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타임 스퉤어 아트(Time Square Arts)와 트라이베카 영화제(Tribeca Film Festival)에서 그에게 권한을 줬죠. 그는 버려진 물건들을 활용해 설치 미술 작품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저는 의상을 담당했죠. 그가 원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작품 안에서 자연스러운 조화를 위해 노력했어요.
제 업무는 의상을 조달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모두 빈티지 룩으로 정했습니다.
샐리송:
저는 쥬얼리 디자인을 볼 때, 어떤 색의 스킨 톤과 손 모양에 어울릴지 본능적으로 알아요. 당신은 어떤 의상이 고객에게 어울릴지 어떻게 아나요? 또 고객의 옷 취향이나 스타일에 어떻게 맞추시나요?
안나수:
전 고객의 취향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위험 부담도 느낍니다. 또 그들의 체형도 고려해야 하죠. 옷으로 체형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죠. 만약 개인을 위한 스타일링을 한다면, 당신은 최선의 방법으로 고객의 스타일을 꾸미고 싶으실 거에요, 의견 조율도 좀 더 쉽죠.
하지만 연예인의 경우에는 옷을 고르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고른 옷을 입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인물사진을 찍을 때, 그들의 주장은 굉장히 강합니다.
샐리송:
당신이 선택한 옷을 고객이 입고 싶어하지 않을때가 많나요?
안나수:
저는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 직업은 그들이 옷을 입었을 때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일입니다.
샐리송:
스타일 리스트로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안나수:
부족한 예산이 항상 문제였습니다. 보통 고객들은 비싸고 좋은 옷들을 원하지만, 그걸 만족 시키기 위한 예산이 부족할 때죠. 그래서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훨씬 좋아 보이는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샐리송:
패션 디자인에서 스타일링으로 진로를 바꿀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안나수:
저는 진정으로 제가 열정있고 하고싶은일을 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부모님도 끝내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신 것 같아요.
샐리송:
저는 분홍색 옷을 입었습니다. 당신은 전부 검정색 옷이네요! 딱 뉴욕 스타일이네요. 당신의 개인적인 스타일은 어때요?
안나수:
저는 무언가를 따라가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저는 제가 관심이 있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아요. 트랜드를 믿지 않습니다.
샐리송:
무엇 때문에 뉴욕에서 LA로 오셨나요?
안나수:
많은 이유가 있었어요. 전 제 인생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NYC를 8년간 다니고 난 후 LA에서 제 삶을 펼칠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샐리송:
저는 일하는 동안 프로젝트를 맡으면 정말 열정적으로 온 힘을 다했어요. 열심히 살려고 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저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안나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열정적이고 사람들을 리드하죠. 저도 그런 기질 덕에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샐리송:
스타일 리스트 꿈나무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나요?
안나수:
스타일링은 화려하지만은 않습니다. 규율과 힘든 작업이 요구됩니다. 좋은 스타일 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사전에 패션, 디자이너, 역사, 기술적인 부분 등을 스스로 익히는 게 중요합니다. 좋은 스타일 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좋은 옷을 걸치는 것을 뛰어넘습니다. 굉장히 논리적인 것이 요구되고 스스로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샐리송:
스타일 리스트를 꿈꾸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안나수:
현시대에서 스타일링은 성공할 수 있고 직업으로도 적절합니다. 제 부모님 세대에는 스타일링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없었죠. 극소수의 사람만이 스타일 리스트를 했습니다. 지금 패션계는 무궁무진합니다. 따라서 스타일 리스트를 필요로 하는 곳도 많아요.
샐리송: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안나수:

"항상 일이라고 느껴지는 직업보다는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자신에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다면, 당신은 원하는 길을 찾을거에요. "

WWW.ANNASUSU.COM

대담:샐리송

정리:써니 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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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도요타 코롤라는 성공을 향한 여러분의 여정에 늘 함께 해왔습니다.
나만의 특기, 나만의 장점, 그리고 나만의 목표를 위해 멈추지 않고 달리는 이들, 성공의 고정관념을 깨고 끝없는 변화와 도전으로 앞장 서 나아가는 차세대 리더의 모습은 도요타 코롤라가 추구하는 정신과 같습니다. 도요타는 자기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리더들과 그 길을 따르는 미래의 꿈나무들을 응원합니다.

새로워진 2017년형 코롤라와 함께 당신만의 길을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