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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불경기와 마라톤

김완신/논설실장

LA국제마라톤이 지난 주말 2만6000여명의 건각들이 참가해 성대하게 끝났다. 이번 대회 참가자 수는 역대 최고치로 알려지고 있다.

불경기에도 마라톤의 열기가 뜨겁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각종 행사들이 축소되고 있지만 마라톤만은 성황을 이루고 있다. 경기가 안 좋으면 마라톤 인구가 줄어 들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불황기에 마라톤 참가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 LA타임스는 마라톤을 새로 시작한 한 실직자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지난 10년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 직장을 향했던 이 남성은 지금은 아침마다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마라톤에 나선다. 매일 수마일을 뛰고 집에 돌아오면 구인 광고를 보며 직장을 찾는다. 마라톤과 일자리 구하기가 하루 중 가장 큰 일과다.

마라톤 인구가 늘면서 불황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해에만 미전국에서 25개의 새로운 마라톤 대회가 생겨 총 470개를 기록했다. 참가 인원도 46만5000명에 달해 전년대비 10% 증가했다. 이는 25년만의 최고 증가율이다.



경기침체기에 마라톤 인구가 느는 이유는 뭘까. 헬스클럽 등에 가입하려면 돈이 들지만 마라톤은 '운동화'와 '시간'만 있으면 돼 살기 힘든 시기에 인기가 높아진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불경기에 마라톤 인구가 증가하는 이유를 단지 비용면에서만 찾지는 않는다.

이보다는 마라톤이 스트레스 해소와 분노 조절에 효과적이고 또한 장거리를 뛰어 목표점에 도달하는 마라톤의 과정이 불황을 이기는 도전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톰 홀랜드 스포츠 심리학자도 불황기에 마라톤을 새로 시작하게 되는 동기의 상당부분이 경제적.신체적 이유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있다고 설명한다. 인체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운동인 마라톤에서 경기침체기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약 4만번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평소 연습을 통해 단련하지 않으면 탈진해 쓰러질 수 있고 심하면 죽음에 이른다. 이같은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는 원천은 몸이 아닌 마음에서 나온다. 강인한 도전의식과 투지 없이 두 다리만으로 완주의 기록을 얻을 수는 없다.

마라톤 참가자들의 목표가 결승선이라면 경기침체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표는 불황극복이다. 목표는 달라도 이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굽히지 않는 의지다.

마라톤에서 먼저 출발한 선수가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는다. 남보다 앞서 가다 뒤질 수 있고 뒤에서 달리다가도 결승선에 먼저 도달할 수 있다. 지금 뒤처져 있다고 해서 영원한 낙오자가 되지는 않는다. 한두 걸음으로 성패가 결정되지 않는 마라톤처럼 삶은 쉼없이 내딛는 수만번 발자국이 남긴 자취다.

멕시코 로키산맥의 타라우마라족의 오래된 달리기 습성을 소개한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본 투 런(Born to Run)'이란 책이 있다.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달리기가 일상화된 이들 종족의 생활방식을 기술하면서 맥두걸은 '달리기는 욕심을 없애 가진 것에 고마워하고 참고 용서하는 너그러운 사람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대지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달리기가 육체를 넘어 정신영역에 속해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아직 불황은 깊고 마라톤보다 더 먼 길을 가야만 하는 여정은 남아있다. 힘겨운 순간들을 인내하고 마음을 내려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지금의 시간들이 그다지 고통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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