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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달하 노피곰 도다샤'

서량/정신과의사 시인

우리 가요 중에 가장 오래된 백제 시대의 정읍사(井邑詞) 원본을 새삼 거론하려 한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대랄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여기에서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같이 흥을 돋구는데 쓰이는 간투사적 후렴을 제외하고 노래의 골자만 현대어로 번안하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된다.

“달아 높이 좀 돋아서 멀리 좀 비치우시라/ 시장을 헤매시나요 진 데를 디딜세라/ 어느 데나 놓고 오세요 님이 간 데가 저물세라”



이것은 행상 나간 남편이 집에 일찍 돌아오지 않아서 아내가 달에게 그의 귀갓길을 멀리까지 비춰달라고 부탁을 하면서도 혹시 ‘진 데(곳)’ 즉, 유흥가에라도 간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여성의 심금을 토로한 애틋한 사연이다.

정읍사는 이조 시대 음악 교과서에 해당하던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실렸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중종실록에 의하면 가사가 남녀간의 음사(淫詞)라 해서 궁중음악에서 금지곡으로 책정됐다는 기록이 있다.

우연히 정읍사를 다시 읽다가 ‘머리곰 비취오시라’라는 구절에서 생각이 멈춘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였음을 밝힌다. 쉬운 말부터 하자면 ‘곰’은 현대어로 ‘조금(좀)’에 해당하는 말로서 ‘빨리 좀 와라’ 혹은 ‘말 좀 해 봐라’ 할 때처럼 채근하거나 애걸하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

옛말로는 ‘멀리’라는 말을 ‘머리’라 했다. 이은하의 유행가 ‘밤차’의 첫 소절, “멀리~ 기적이 우네”를 백제시대 말로 하면 “머리~ 기적이 우네”가 되겠다.

'head’는 고대영어에서 ‘heafod’라 했는데 ‘top of the body; upper end of a slope: 몸의 꼭대기, 언덕의 정상’이라는 뜻이었다. 사람 머리도 머리지만 언덕 위에 걸린 해나 달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시적인 말이다. 거두(巨頭: 큰 머리)는 영향력이 크며 주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고, 두목(頭目)은 한 패거리의 우두머리를 일컫는다.

'머리 수’와 ‘도읍 도’가 합쳐져서 수도(首都)를 ‘capital city’라 하는데 이 단어는 13세기 초 라틴어의 ‘caput: 머리’에서 파생됐다. 한 나라의 최고 신경중추에 해당하는 도시에 ‘머리’라는 개념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모자(cap)도 배의 선장 ‘captain’도 같은 말에서 유래했다.

동물을 셀 때 ‘한 마리, 두 마리’ 하는 것도 ‘머리’의 파생어. 양키들도 머릿수를 셀 때 ‘head count’라 하고 시체 수를 셀 때는 ‘body count’라 한다. 그들에게 죽은 생명은 머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headway’는 ‘진전’ 혹은 ‘진척’이라는 뜻이다. 동물이 앞으로 나갈 때 맨 먼저 머리가 앞으로 나가는 법이려니. 그래서 ‘We made lots of headway’하면 일이 많이 이루어졌거나 많은 진보가 있었다는 말이다. 즉 멀리까지 전진을 했다는 의미다.

정읍사의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라는 구절에서 ‘멀리’의 말뿌리가 ‘머리’에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 당신도 한 번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보라.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밤 늦게 귀가하는 님을 기다리던 그 옛날 한 여인의 아련한 자태를. http://blog.daum.net/stick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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