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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울지 말라, 한국 해군

안유회/전국 에디터

20여 년 전 한국. 서점에서 '로빈슨 크루소' 번역판을 보았다. 표지에는 '첫 완역판'이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그럼 지금까지 나온 '로빈슨 크루소' 한글판은 모두 부분 번역이었단 말인가?' 서문을 폈다. 책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 번역판은 배의 구조나 부품 항해 부분을 빼놓았다는 것이었다. 셀 수 없이 쏟아지는 배의 부품 명칭과 항해술 용어는 이를 모르는 이들에겐 번역 불가능의 세계였다. 독서의 재미를 빼앗는다는 핑계도 작용했다. 역자는 이전의 한글 번역판이 빼놓은 배와 항해 묘사 부분이 '로빈슨 크루소'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영국인들은 그 대목에서 자신이 큰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흥분과 박진감을 느꼈을까? 영국인에게는 묘미지만 한국인에게는 건너뛰고 싶은 지루한 대목. 그 만큼이 바다로 나아가 세계에 닿은 영국과 바다에서 몰려든 외세에 나라를 빼앗겼던 한국의 차이라면 과장일까.

지난달 26일 한국 해군의 초계함 '772 천안함'이 서해에서 두 동강 나 침몰했다. 탑승원 104명 가운데 46명이 실종됐다. 이후의 상황 전개는 재앙이었다. 처음엔 북한에 피격당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배에 구멍이 뚫리는 파공 암초 어뢰. 기뢰 피로절단 등 침몰과 관련해 상상 가능한 모든 설들이 파도처럼 날뛰었다. 침몰 이후 3일 동안 안보장관대책회의가 네 차례나 열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해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공격설은 대통령의 적극적인 진화에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셀 수조차 없다.

바다로 나가면 흥하고 바다에서 물러나면 망한다고 한다. 바다에서는 힘과 힘이 부딪치고 세력이 파도처럼 일었다 스러지고 새로운 세력이 솟구친다. 그렇게 바다는 대개 서사의 공간이다.



한국이 천안함 침몰로 들끓던 시간.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은 유조선 삼호드림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을 쫓아 아프리카의 바다를 달리고 있었다.

이게 한국 해군이다. 대양해군을 건설하는 서사의 해군이다. 한국 해군은 1995년 샤렘훈련에서 미국 해군의 대잠방어망을 뚫고 기함을 명중시켰고 2년 뒤 독수리 훈련 때는 상륙항모까지 격침시켰다. 잠수함 장보고함은 보급없이 단독으로 하와이까지 항해해 일본을 놀라게 했다. 2007년엔 한국산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을 진수했다.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 함정은 LA와 샌디에이고 볼티모어항 등에서 한인들의 가슴에 긍지를 심어주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로 한국 해군은 서사의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파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어선이 침몰한 군함을 찾고 구조 작업은 엉성하고 실종자 가족에게 총을 겨누고 도망치는 함장의 차는 발길질을 당했다.

그렇다고 해군 장병까지 신파에 밀어넣으면 안된다. 지난 7일 열린 합동 기자회견에서 생존자들은 환자복 차림으로 고개를 떨구거나 눈물을 흘렸다. 유일하게 군복을 입은 최원일 함장은 팔뚝으로 눈물을 닦았다. 아무리 생존자를 격리한다는 비난에 시달렸어도 이건 수모다. 군복을 입게 하고 당당할 수 있게 해줘야 했다.

신파는 울어도 서사는 울지 않는다. 그래서 군인은 울지 않는다. 함장을 포함한 생존 부대원 전체가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보이게 해서는 안되었다. 함정도 모자라 기백까지 침몰시킨 꼴이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밝혀낸 것이 없으면서 왜 이들을 '살아남은 죄인'처럼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함장은 함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고? 그건 제국주의 일본 해군의 구닥다리 논리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싸우는 것이 군인이다.

천안함 침몰의 유일한 서사인 한주호 준위마저 훈장과 일계급 특진 번복으로 신파로 만든 지금 생존 군인까지 고개 떨구게 하면 안된다.

이들은 1200년전 청해진을 설치해 동북아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와 증기선 없이도 근대적인 함포전을 구사했던 이순신 함대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대양해군을 향해 힘차게 항해하며 잃어버린 바다를 되찾고 있는 병사들이다. 이들을 울게 해선 안된다.

울지 말라 한국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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