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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꿈꾸는 브루클린 화가

안성민/화가

금요일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밤 발레 공연 갈래?” “오늘! 하늘인 어쩌고?”

우리의 일상 대화다. 그는 번개치듯 갑자기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한다. 반면에 A형인 나는 계획하고 준비하는 타입이다. 아이를 낳은 후론 번개 데이트가 더욱 현실에서 멀어졌다.

친정도 시댁도 가까이 없는 우리에게 어린아이는 ‘소중한 짐덩이’다. 금요일 밤은 베이비시터가 고정적으로 다른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데이트한지 오래다.

하지만 남편은 한번 맘 먹으면 꼭 해야하는 성격이다. 난 발레공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날 밤 유일한 하늘이의 단짝친구인 착하디 착한 지안이의 엄마에게 하늘이를 맡겨버리고 말았다.



예술중·고등학교를 다닌 덕에 어렸을 때부터 공연을 볼 기회가 많았다. 학교의 대강당으로 사용하던 리틀엔젤스예술회관은 당시 서울에선 유일하게 유럽풍의 인테리어를 갖춘 공연장이었다. 붉은 벨벳의 실내에 장식된 화려한 금박의 문양들이 12살의 나에겐 동화속에 나오는 궁전같았다.

학교재단은 문화재단도 같이 운영하며 이곳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아티스트들을 초청하여 음악회며 발레 공연등을 늘상 마련했다. 덕분에 우린 풍요로운 문화환경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 학교 출신인 발레리나 문훈숙은 유럽에서 활동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유니버설 발레단을 창설했다. 1년에 서너번씩 하던 그의 공연들을 졸업하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보았다. 심지어는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기도 했다.

싼 가격의 입석표를 이용하기도 했고, 무용부 스튜디오와 연결된 뒷문을 통해 몰래 들어가 공짜 공연을 보기도 했다. 그 만큼 그녀가 보여주는 무대 위의 세계는 매력적이었고 사뿐사뿐 춤추는 그녀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느날엔 소프라노 조수미가 모교를 방문하여 바로 그 대강당에서 전교생을 모아놓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난 그녀가 누군지도 몰랐을뿐더러 짙은 화장에 공주풍의 원피스를 입은 무대 위의 그녀가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식의 마지막 순서로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었을 땐 그 누구도 숨조차 쉬지않는듯 했다. ‘아! 사람에게서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 수 있다니! 우리의 몸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악기가 될 수 있구나!’ 어린 나에게 그것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소리에 대한 감동이었다.

조수미나 발레리나 강수진 등 내노라 하는 한국인이 우리 학교 출신인것은 아주 큰 자극제였다. 그들은 포스터속의 예술가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잡힐듯한 현실 속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앉아있는 이 책상을 거쳐간 누군가가 지금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어있다는 사실은 10의 소녀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나도 저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겠어!’ 라고, 그 때부터 말 없이 꿈꾸어 왔다. 그리고 그 꿈이 오늘 나를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옮겨놓은 셈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새벽녘에 부시시한 머리로 일어나면 아이가 깰까봐 살그머니 침대에서 나와 정신없이 도시락을 싸면서 전쟁같은 하루가 또 시작이다.

하지만 오래전 ‘아주 특별한’ 조수미의 노래를 들으며 두방망이질하던 심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일주일에 겨우 몇일뿐이지만 작업실로 향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가슴이 설렌다. 수많은 뉴욕의 아티스트 행렬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 앞으로 걸어갈 뿐이지만 아직도 나의 꿈은 끊임없이 숨을 쉬고 나날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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