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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와 노조 사이’ 3인4각 경기의 달인들

[조인스] 기사입력 2010/04/12 14:53

10년 넘게 장수한 중견기업 CEO … 주인 의식, 원대한 비전, 강한 추진력이 비결

연 매출 1조원 이하 중견기업은 통상 오너 경영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만큼 전문경영인이 최고경영자(CEO)로 장수하기란 쉽지 않다. 국내 500대 상장사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3.3년(한국CXO연구소)이다. 지난달 마무리된 12월 결산법인의 주주총회에서도 상당수 CEO들이 바뀌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전문경영인으로 10년 이상 장수(長壽)하고 있는 중견기업의 장수(將帥)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탄탄한 실적이다. 오너와 노동조합 사이에서 소통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이를 두고 생존경영연구소 서광원 소장은 “이들이야말로 왼쪽 발목은 오너와, 오른쪽 발목은 임직원과 발목을 묶고 달리기를 하는 ‘3인4각 경기의 달인’”이라고 표현했다.

◆장수하는 장수=공작기계 제조회사인 화천기계의 조규승(65) 사장은 지난달 19일 주주총회에서 2013년까지 대표이사 연임이 결정됐다. 그는 1997년 초 회사 경영을 맡은 이래 5연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가구업계 1위 한샘의 최양하(61) 대표이사는 올 초 회장으로 승진했다. 오너인 조창걸(71)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 최 회장은 94년부터 이 회사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달 농심홀딩스에서 농심 대표이사로 복귀한 이상윤(68) 부회장은 19년째 CEO로 장수하고 있다. 중견 제약회사인 삼진제약도 이성우(65) 사장의 4연임을 의결했다.

대표적인 중견기업 장수 CEO로는 84년부터 일동제약·후디스를 이끌고 있는 이금기(77) 회장이 첫손에 꼽힌다. 보일러 제조업체인 경동나비엔의 김철병(60) 사장은 13년째, 결혼정보업계 1위 듀오의 김혜정(여·46) 사장은 10년째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탄탄한 실적은 기본=조창걸 명예회장의 권유로 79년 한샘에 입사한 최양하 회장은 당시만 해도 대기업 하청업체였던 이 회사를 20여 년 만에 업계 1위로 키웠다. 전국 영업망을 구축하고 인테리어 사업에 도전한 결과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은 5400억원이었다.

농심 이상윤 부회장은 80년대 후반 ‘라면 전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업계 1위 삼양식품을 제친 주인공이다.

화천기계 조규승 사장은 지난 13년 동안 450억원이던 화천기계의 연 매출을 1450억원으로 불렸다. 자동차부품 사업에 뛰어들면서 연 400억원대 신규 매출을 창출한 것. 은행 빚도 없는 알짜회사를 만들었다. 그는 “‘현장 결재’ ‘매달 실적 공개’를 빼놓고는 한 일이 없다”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런 현장 경영·투명 경영으로 화천기계는 업계 최고 경쟁력을 갖췄다.

이성우 사장이 대표를 맡고부터 삼진제약은 지난 9년간 연평균 16%씩 매출이 늘었다. 그는 연 매출 200억원을 올리는 진통제 ‘게보린’을 개발한 주역이기도 하다. 듀오 김혜정 사장은 2000년대 이후 결혼정보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도 웨딩 컨설팅과 재혼 사업 등을 개척해 매출을 두 배로 늘렸다.

하지만 단기 실적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김철병 사장은 “무작정 외형 확대만 외치다 보면 회사는 껍데기밖에 남지 않는다. 실속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사장은 “확실하게 다져가면서 회사를 키우는 것이 검증된 CEO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구원투수도 마다하지 않는다=이금기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일동제약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자 일동후디스 대표에서 이 회사 대표로 복귀해 3년 만에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그는 “피로회복제 ‘아로나민’을 처음 개발했을 때 회사 월 매출이 400만원이었는데 ‘이 중 4분의 1을 마케팅에 쏟아부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오너보다 더 과감하고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CEO로 장수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경동나비엔 김철병 사장은 지난해 6개월가량 본사를 비워두고 미국 법인장으로 나갔다. 미국에서 순간식 온수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현장에서 영업·교육 등을 지휘한 것. 현재 경동나비엔은 이 시장에서 북미 3위에 올라 있다. 그는 2001년에도 중국 베이징 법인장을 자원해 생산라인의 불량률을 크게 줄인 적도 있다.

◆오너·임직원 사이 ‘윤활유’=화천기계 조규승 사장은 지난달 5연임이 결정된 직후 창원 공장에 내려갔다가 직원들로부터 ‘이제 그만 은퇴하셔야지요?’라는 인사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CEO에게 자연스럽게 농담을 건네는 이 회사의 기업문화에 그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장수하는 CEO들의 또 다른 특징은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 사장은 “사장 취임 뒤 가장 큰 보람은 노사 안정”이라고 말했다. 삼진제약 이성우 사장 역시 9년 내리 노사 무분규·무교섭 임금 협상을 성사시켰다.

물론 오너와의 신뢰도 돈독하다. 듀오 김혜정 사장은 “업종 성격상 여성 CEO를 찾고 있던 듀오에 영입된 것”이라며 “오너와 친척이라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듀오의 오너인 정성한(48) 고문과는 먼 친척 뻘이다. 김 사장은 자신의 장수 비결로 임직원과 장벽 없는 소통을 꼽았다.

화천기계 조규승 사장은 ‘노조가 우선이냐, 오너가 우선이냐’는 질문에 “사람을 아껴야 한다. 이것은 오너도 바라는 것”이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한샘 최양하 회장은 “오너가 그리는 미래와 회사의 현실 사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어야 유능한 전문경영인”이라고 말했다.

글=이상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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