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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 '면도날 제구력' 이상군 (2)

이상군 투수는 한화의 정성으로 성공한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주의 한 시골 마을 소년이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가 되게 한데는 한화 창립자인 김종휘 회장의 남 다른 야구 사랑에서 비롯됐다.

김회장이 오말리 다저스 구단주의 초대로 LA 다저스구장을 방문을 했을 당시 ‘미스터 다이너마이트’로 관객들에게 소개되면서 그의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비쳐지면서 관중들의 환호를 받게 됐다. 그 감동을 못 잊은 김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천안 북일고에 야구부를 창단시키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

이 때 청주중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이상군이 유망주라는 소문을 듣고 초대 북일고 감독이었던 김영덕 감독을 앞세워 이상군을 스카우트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 당시 한국화약이 이상군 선수의 아버지에게 제시한 조건은 초고교급 선수가 대학으로 스카우트 될 때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

금전적인 것은 물론이고 형들의 직장 보장까지 해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이상군을 천안 북일고로 데려오는데 성공을 하게 된다.

스카우트에 관여했던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이상군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사용한 비용도 상당한 액수였다고 한다.

정말로 유비가 제갈량을 부르러 삼고초려(三顧草廬) 했듯이 김종희 회장이 이상군을 위해 들인 공이 이렇듯 엄청났던 것이다. 재벌 총수로서는 보여주기 힘든 행동이었다.

이러한 김 회장의 정성에 천안 북일고 신화를 같이 쓴 이상군과 김상국 콤비는 전국 대회 우승으로 보답을 한다.

그러나 김 회장은 자신이 만든 북일고가 이룬 전국 고교 야구대회 우승의 기쁨은 맛보았지만 정작 자신의 숙원 사업이었던 충청도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 창단을 보지 못하고 아들 김승연 회장에게 유지로 남기고 세상을 뜨게 된다.

이것이 이상군과 한국화약과의 끊을 수 없는 관계로 지속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금도 김승연 회장의 이상군에 대한 지지는 여전하다.

항간에 이를 놓고 투수 코치 자질도 없는 이상군을 너무 비호 한다는 팬들의 항의도 없지는 않지만 3년간의 외도를 끝내고 다시 투수 코치로 귀향을 했고 차기 한화 이글스 감독이라는 설도 나돌고 있다.

물론 앞으로 지켜 봐야 할 일이지만 역대 빙그레 이글스 출신 선수들을 홀대하지 않고 이글스를 위해 공헌한 선수들을 천안 북일고 감독직에 맡기며 보답하는 김승연 회장의 성격으로 보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프로야구는 냉혹한 승부가 걸린 세계이기 때문에 김 회장의 의리가 앞설지 팀의 성적을 위한 결정이 우선일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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