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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가족은 '유령'이 아니다

김석하/로컬 에디터

세상은 컴퓨터.휴대폰.종이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루라도 이 세가지를 만지지 않는 사람은 극히 적다.

컴퓨터로 일하고 휴대폰으로 대화하고 커피가 든 종이컵을 만지며 휴식을 취한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필수품인 된 이 세 품목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벽을 쌓는다. 상대방의 눈과 표정을 볼 수 없고 숨결과 몸짓을 느낄 수도 없다. 또 대부분이 '너와 나' 일대일 관계로 이뤄지기 때문에 집단적 공유인식은 희박하다. 이메일과 메신저로 이야기하고 휴대폰으로 대화(문자)하면 되는데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그나마 '서로 마주앉는' 커피타임도 종이컵을 들고 다니며 짧게 끝낸다.

'자발적 외톨이'가 증가하는 이유다. 이들에게 이런저런 인간관계는 번거롭고 피곤할 뿐이다. 50대와 20대를 두 그룹으로 나눠 노사연의 '만남'을 들려준다면 만남의 장소를 50대는 커피숍이나 공원 등 실제적 장소를 생각하겠지만 20대는 온라인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가상의 장소)를 떠올릴 것이다.



유령진동증후군(phantom vibration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전화가 안 왔는데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던 휴대폰이 '드르륵' 울리는 듯한 현상이다. 환촉(幻觸).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본 이 현상은 휴대폰이 얼마나 우리 생활에 깊숙히 들어와 있나를 반증한다. 특히 핸즈프리 휴대폰을 사용하는 경우 허공에 대고 혼잣말 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 유령과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같은 'CCC' 즉 컴퓨터(computer).휴대폰(cellphone).종이컵(cup)은 가족의 끈마저도 '싹뚝' 잘라놓고 있다. 컴퓨터로 부모는 영화나 드라마에 몰두하고 아이들은 게임과 채팅에 빠진다. 휴대폰은 남편.아내.자녀들의 일상생활을 매 시간 간섭한다.

루처스대학 제임스 카츠 교수의 지적대로 '항상 외부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 좀 내버려 둬!"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다. 결국 사적(가정) 영역과 공적(일) 영역의 경계가 붕괴되면서 가족은 '외톨이'들의 군거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 속에 참 대화는 사라지고 '유령'들과의 잡담만 떠돈다.

'종이컵 길들여짐'은 무너지는 가족 관계의 일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쁘다보니까 손에 쥔 종이컵이 버릇이 되면서 찻잔 속의 따뜻함과 여유는 송두리째 깨지고 있다.

가족들이 테이블에 앉아 진짜 잔으로 커피나 차를 마시는 집은 이제 희귀할 정도다. 한 소설가가 "녹아 풀어진 종이가 커피와 섞인 맛은 싫다"던 그 맛이 이젠 대세가 된 셈이다. 베스트셀러 '세 잔의 차(그레그 모텐슨 저)'에 보면 목숨을 구해준 히말라야 족장이 저자에게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이방인이다.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손님.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신다면 당신은 가족이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가족들과 최근 세 잔의 차를 마셔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없어서는 안될 것 같은 'CCC' 때문에 오히려 의미있는 것들이 희생되고 있다. 물론 시대 조류를 억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의 기반인 가정마저 그 흐름에 함몰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봄날 5월이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한번 느끼는 달이기도 하다. 'CCC'를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내팽개치자. 가족은 '유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끄고 휴대폰을 접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가족이 되는 데는 세 잔의 차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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