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임금 투구·갑옷 브루클린뮤지엄에 있다

1913년 뮤지엄 큐레이터가 조선·일본 방문 때 구입…한국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스님 6월 방문 계획

조선시대 임금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투구 2점과 갑옷 2점이 브루클린뮤지엄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6년 발간된 ‘브루클린뮤지엄 소장 한국문화재’ 도록에 용봉문두정투구(龍鳳紋豆釘甲) 2점과 용문두정갑옷(龍鳳紋豆釘胄)이 소장품으로 게재되어 있다.

이중 삼지창과 상모가 달린 용봉문두정투구(분류번호 280)는 지난해 10월 한국미술 애호가 모임인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의 뮤지엄 창고 한국미술품 투어에서도 공개됐던 유물이다.

뉴욕에 체류중인 고대복식 연구가 권준희 박사는 “용 문양도 중요하지만, 용의 발톱 수로 신분을 구별한다”면서 “발톱이 5개인 것으로보아 왕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또한 갑옷이 붉은색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고종이 황제가 된 이후에는 황색을 착용했으므로 고종의 황제 즉위 전이나 이전 시기의 철종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이 의전 때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 용봉문투구와 갑옷은 국내에선 발견된 바 없다. 지난달 6일 시민단체 문화재 제자리찾기(사무총장 혜문 스님)와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용봉문 투구와 갑옷, 그리고 임금의 관모가 소장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환수 필요성을 제기했다.

어떻게 조선 왕의 투구와 갑옷이 미국의 뮤지엄에 들어왔을까.

브루클린뮤지엄 아시아미술 큐레이터 조안 커민스는 “1913년쯤 뮤지엄의 첫 아시아 큐레이터였던 스튜어트 컬린이 미술품 수집차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구입했다”며 “그러나 정확히 언제 뮤지엄으로 들어왔는지는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유물번호 앞에 X가 붙은 것도 연도가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혜문 스님은 “상식적으로 제왕의 상징물이 타국 박물관에 정상적인 경로로 들어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조선시대 최고 군사·정치권력의 상징이 망국 100년을 맞는 시점까지 타국에 인질처럼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유통 경로, 반출 경위 등을 확인해서 일본 도쿄박물관 소장품에 대해서 부터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라며 “또 6월 중 뉴욕을 방문해 투구와 갑옷을 직접 열람하거나 담당자와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종족학자였던 스튜어트 컬린(1858∼1929)은 각국의 미술, 복식과 놀이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고고화석학뮤지엄(UPMAP) 디렉터를 거쳐 1903년 브루클린뮤지엄 큐레이터로 발탁됐다. 1895년 한국과 아시아 각국의 놀이 문화를 비교한 책 ‘코리안 게임’을 출간하기도 했다.

1897년 설립된 브루클린뮤지엄은 당대 명 건축회사인 맥킴, 미드 앤 화이트의 설계로 지어졌다. 1974년 미국 내 메이저 뮤지엄 사상 최초로 한국실을 설치했으며, 14세기 아미타삼존도, 장승업의 ‘거위와 갈대 그림’ 등 한국유물 66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1978년엔 소장 한국 미술품으로 특별전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열었다.

[용봉문 투구·갑옷 지상 관람] 용 문양은 발톱 수로 신분 구별
명나라 황제와 동격인 5개…만(卍), 여의주 등으로 장식


갑옷과 투구는 전쟁 때 뿐만 아니라 의전용으로도 착용됐다. 갑옷의 종류로는 소재에 따라 찰갑, 피갑, 경번갑, 목면갑, 두정갑, 어린갑 등이 있다. 두정갑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

용봉문(龍鳳紋)은 왕의 의복이나 기물에 용과 봉황 무늬를 그려넣은 것이다. 고려사에는 현종 16년 어사대에서 “중앙과 지방의 서민이 용무늬·봉황무늬의 의복 착용이나 기물 사용을 금지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나와있다.

용봉문 투구는 위는 좁고 아래로 퍼지면서 하반부에서 대철(帶鐵)로 마무리한 한국의 전형적인 상첨하광식(上尖下廣式) 투구로 용과 봉황, 여의주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브루클린뮤지엄 소장 한국문화재 도록에서 용봉문두정 투구와 용문두정 갑옷의 사진을 검토한 고대복식 연구가 권준희 박사는 “용문양은 발톱의 수로 신분을 구별하는데 5개, 즉 5조룡(五爪龍)이면 왕, 4개일 경우 왕세자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박사는 “조선의 왕은 명나라 황제보다 2등급 아래의 옷을 착용했다. 아이러니하게 용봉문투구(*282)의 문양에서 용의 발톱은 명의 황제와 동일한 5개 발톱이다”며 “조선 태조와 영조의 곤룡포에서 5조룡 문양이 확인되는데, 명이나 청의 황제 복식에서도 5조룡이 보인다”고 말했다.

브루클린뮤지엄의 용봉문두정투구와 용문두정갑옷을 지상으로 감상한다. 해설은 뮤지엄 도록을 참고했다.

용봉문두정투구(X957.1a/280)=반구형 덮개에 넝쿨무늬, 근철엔 넝쿨과 만(卍)자 무늬를 새겼다. 앞면의 근철 좌우에는 여의주와 발톱이 3개인 용, 즉 3조룡을 조각해 붙였다.

하반부 대철에는 넝쿨과 봉황 무늬가 보인다. 이마가리개 중앙 원형엔 덕(德)자를 부조했고, 좌우엔 중앙의 여의주를 향하여 용이 날아드는 형상을 새겼다.

용문두정갑옷(X957.1b/281)=가슴 앞이 여며지지않고 맞닿으며, 옆과 위에 트임을 주었다. 겉은 붉은색, 안감은 파란색으로 해서 모(毛)로 테두리를 둘렀으며, 겉에서 두정을 박았다.

목둘레에는 택사(澤瀉) 잎과 꽃무늬 장식을 붙였다. 어깨엔 용 모양의 견철을 대고, 가슴 중앙에는 전설의 동물 해태 모양의 단추를 달아 여밀 수 있게 했다.

용봉문두정투구(X957.3a/282)=앞면의 근철 좌우에는 여의주와 5개의 발톱인 5조룡, 뒷면엔 봉황을 조각해 붙였다. 하반부 대철에는 용무늬와 이화 무늬를 부조하고, 봉황 무늬를 투각해 장식했다. 이마가리개에는 중앙으로 날아드는 비룡을 새겼다.

목가리개용 드림의 겉은 붉은색, 안감은 파란색으로, 가장자리는 모피로 선을 둘러 붉은실로 거칠게 감침질했다. 드림 상단에는 여의주 무늬모양 장식을 달고 중앙에 둥근 두정을 박았다.

용문두정갑옷(X957.3b/283)=가슴 중심에서 앞 트림으로 여며지지않으며, 옆과 뒤에 트임을 주었다. 겉은 붉은색으로 용문두정갑옷(281)의 모(毛) 대신 남색(藍, indigo) 천으로 테두리를 달았다.

목둘레에는 택사 잎 형태의 장식을 붙였으며, 어깨에는 용 모양 견철을 대고, 가슴 중앙엔 단추를 달아 여미게 했다. 단추 고리는 3개가 남아 있으나, 단추는 둥근 모양 2개만 남아 있다.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