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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화해하라, 시간이 없다

이종호/논설위원

6.25 60주년을 맞아 본사가 주최한 수필공모전의 글들을 봤다. 응모작 중에는 의외로 나이 70이 넘은 분들의 글이 많았다. 컴퓨터 시대 답지 않게 한 자 한 자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 속에는 60년 세월에도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구절마다 울분과 분노와 회한이 넘쳐 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고통과 원망도 배어 있었다.

그들의 기억처럼 6.25는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현대사였다. 1127일의 전쟁 기간 동안 국군 전사자 13만7889명 미군 전사자도 3만6940명이나 되었다. 민간인 사망자와 실종자는 남북한 합쳐 25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어느 한 곳 영향을 끼치지 않은 곳이 없었음에도 6.25는 갈수록 '잊혀진 전쟁'이 되고 있다. 이념.안보 등 민감한 사안들 때문에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고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제대로 교육되지 못했다.

한국 초등학생의 35.1%가 6.25를 남한이 일으킨 것으로 50.7%는 조선시대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는 그래서 충격적이다 못해 비감하기까지 하다.



6.25를 보는 시각 역시 달라지고 있다. 보수 따로 진보 따로 전쟁을 바라보고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분명한 것은 있다. 남과 북이 결국엔 하나가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안착되어야 하고 분단의 고통이 더 이상 재생산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남북의 대치 반목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평화 정착은 커녕 통일의 비전조차 도출해 내지 못한 채 불신과 증오의 쳇바퀴만 굴려온 60년 세월이 그래서 더욱 한스럽다.

한 때 미국도 남과 북이 갈라져 피비린내 나게 싸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통합했다. 남북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게티스버그에서 1913년 6월 25일 열린 캠핑 행사는 그런 화합의 상징이었다. 7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게티스버그 전투 50주년을 기념하는 그 자리엔 남.북군 출신 5만여 명의 노병들이 모였다. 280에이커의 벌판엔 8인용 텐트 7000여 개가 쳐졌고 173개의 야전식당도 마련됐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충돌에 대비해 기병대 병력이 캠핑장 외곽을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총을 겨눴던 노병들은 함께 음식을 나누며 옛날을 얘기하고 먼저 간 서로의 동료들을 위해 눈물 흘렸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남과 북은 적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은 형제임을 확인했다.

미국 역사는 그 날을 '1913년의 대화합(the Great Reunion of 1913)'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화합 위에 미국은 세계 최강의 번영국이 될 수 있었다. 우리라고 왜 그렇게 못하겠는가.

원래 비극과 고통은 그 크기에 비례하는 만큼의 눈물과 노력없이는 극복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6.25세대는 그 동안 흘릴 만큼 충분히 눈물도 흘렸다. 우리 정부 역시 지난 10년간 할 만큼 노력도 했다. 이젠 그야말로 추수할 일만 남은 것이다.

그렇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아무리 눈물 흘리고 화해의 몸짓을 보낸들 상대가 귀 막고 눈 막고 있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기에 내미는 손마저도 잡지 못하는 북한의 몽매가 측은하고 안타까운 것이다.

내일이면 6.25 발발 60주년이다. 당시 17세 학도병은 77세 노인이 됐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그들이 분노와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나게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남과 북이 다시 화해를 생각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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