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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월드컵 일본전을 보는 두 마음

이종호/논설위원

한일 대항전이 열릴 때 응원석에서 혼자 일본을 응원하면 어떻게 될까. 어느 TV 방송이 지난 WBC 야구 때 몰래카메라로 실험을 해 봤다. '서울역 앞 광장 길거리 응원 현장. 한 남자가 일장기를 꺼내 들고 일본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군중들은 처음엔 의아하게 나중엔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본다. 마침내 한 사람이 다가가 시비를 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달려든다. 자칫 봉변이라도 당할 상황. 결국 남자는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실험이긴 했지만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줄곧 응원했다는 일본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어제 한류스타 박용하의 급작스런 죽음에 일본 팬들이 그토록 슬퍼했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우리의 눈높이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는 경쟁국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우호적일 수가 있을까.

지난 번 일본의 월드컵 16강전을 보면서 우리는 아주 묘한 경험을 했다. 파라과이와의 승부차기를 지켜보면서 그래도 일본을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일본의 실축에 환호하는 이중적인 모습에 스스로 놀랐던 것이다.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일본이라도 8강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가슴 밑바닥까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머리 따로 가슴 따로였다고나 할까.

이런 심리는 한국인의 유전자 속 깊숙이 각인된 '쓴뿌리' 때문이라고 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고려 말부터 횡행했던 왜구들의 노략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무참히 유린당했던 국토 그리고 1910년 강제합병과 이어진 35년간의 모진 수탈과 억압. 켜켜이 쌓인 이런 응어리들이 '반일 DNA'라는 쓴뿌리가 되어 민족의 집단감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다른 어떤 나라에는 져도 참겠지만 일본만큼은 이겨야 한다는 경쟁심도 결국 대물림되어 온 이런 상처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앞선 자의 여유인지 일본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한국을 경쟁적으로 생각지도 않고 적대감도 덜해 보인다. 오히려 의아하리만치 한류에 열광하고 한국문화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국교회복 반세기가 지났지만 우린 그렇지가 못하다.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고 김연아가 아사다를 물리치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이 싫고 밉고 부담스럽다. 아직도 극복 못한 열등감이고 씻어 내지 못한 피해의식이라 해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도대체 이런 응어리는 어떻게 해야 풀릴까. 일본이 침략의 과거사를 백배사죄하고 머리 조아려 온다면 될까.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대해 사죄 보상을 하고 독도에 대한 생트집도 더 이상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면 용서가 될까.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령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앙금이 완전히 가실 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우리가 먼저 일본에 대한 과잉감정부터 다스리는 것이다. 더 이상 일본을 특별한 관계의 눈으로가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무턱대고 미워하고 증오할 게 아니라 좋은 것은 좋게 나쁜 것은 나쁘게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했다. 아마 민족간의 용서는 훨씬 더 긴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노력한다면 한일 양국이 더 좋은 이웃으로 살아갈 날을 조금은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린 할 수 있다. 여러 부문에서 우리는 이미 일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한 나라 멋진 민족을 이루어 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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