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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산악인 최경자씨 '터벅터벅…산길 1006마일' 여든살 그녀는 꿈길을 걷는다

멕시코-캐나다 종주 도전…예순에 시작 20년 한걸음, 히말라야-아프리카까지
지난해 대장암도 이겨내…'자연과 한몸' 벅찬 깨달음

올해 여든살. 다시 등산화 끈을 묶었다. 이번엔 1006마일이다. 멕시코와의 국경에서 캐나다와의 국경까지 미 서부대륙의 백두대간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2650마일 종주를 끝내기 위한 대장정이다.

1998년 시작해 한해에 한달씩 4년에 걸쳐 멕시코 캄포에서 오리건 애쉴랜드까지 1650마일 험한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8년만에 다시 그 산맥에 오르는 것이다. 그때 멈췄던 오리건에서 캐나다 국경마을 매닝파크까지 1006마일을 석달간 걸을 예정이다.

할머니 최경자씨. 지난해에는 대장암 수술까지 받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래서 간다고 했다. 더 미루면 못할 것 같아서 죽기 전에 꼭 하고싶었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래도 물었다. 그게 왜 그렇게 하고싶냐고. 산이 좋아서라는 말만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이 어떤 곳인가. 매일 쉼없이 10마일 이상을 걸어야 하고 등에 져야할 배낭의 무게는 줄여도 줄여도 50파운드가 넘는다. 텐트와 침낭 코펠 버너 등 기본장비에 최소 한달은 먹어야할 식량을 담은 배낭은 지고 서는 것만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런데 최 할머니의 키는 5피트 2인치 몸무게는 130파운드다. 배낭을 메고 서면 몸이 거의 가려질 정도다.

"몸이야 물론 고생스럽지요. 물이 불어 다리가 떠내려가면 통나무를 붙잡고 죽을똥 살똥 강을 건넜고 가뜩이나 무거운 배낭은 비에 젖어 어깨를 짓누르는데 걸음이 느리니까 캠프장까지 못가면 해지기 전에 평평한 땅 어디든 골라 텐트를 쳐야하고 간신히 지친 몸을 뉘이면 밖에선 야생동물들이 울부짖지…."

하지만 산길을 걸으며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고 한다. 미스코리아도 대통령도 부럽지 않았고 자신의 땅딱말하고 꼬부라진 다리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지 그리고 그 첩첩산중에서 살면서 배워야할 것들을 다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허구헌날 혼자서 걷고 또 걷다보면 나라는게 그냥 없어져버려요. 세상에서야 사람이 제일이지만 산속에 있으면 사람이 정말 별게 아니고 땅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나 나나 다 똑같아요. 내가 산인지 산이 나인지 자연과 내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게 절로 느껴지는데 그 순간의 평안함과 행복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기자는 입을 다물었고 최 할머니는 마음을 울리는 깨달음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흔한 물 한방울이 없어서 목이 타들어갈 때 물한방울의 귀중함을 알게됐고 애써 지고 갔던 음식이지만 남아서 버려야할 때면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족한데 뭔 욕심을 그리 부리며 사나 싶었고 거대한 나무도 쓰러지면 썩고 그걸 파먹으며 벌레가 살고 풀이 돋는데 삶과 죽음이 결국은 하나더라고요."

80평생 남의 고기 먹고 살았으니 죽어서 배고픈 짐승들 배불리 먹게해주는 것도 괜찮다는 최 할머니 말을 들으며 "산속에서 일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요" 라는 물음은 입안으로 삼키고 말았다.

최 할머니가 산악등반을 시작한 건 6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집 한번 비우지 않는 가정주부로 아이 셋을 번듯한 직업인으로 키운 뒤 등산을 따라나섰고 그러다 산에 마음을 빼앗겼다. 한번 갔다오면 또 가고 싶어졌고 일일산행은 양에 차지않았다. 그때 알게된 게 존 뮤어 트레일이었다.

휘트니산에서 요세미티 밸리를 잇는 211마일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는 그 길에 마음이 꽂혀 머리로는 하룻밤에도 몇번이나 그 산을 넘었는지 모른다. 한인 중에는 가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고 혼자는 겁이 나고 2~3년을 책을 보며 캠핑을 연습하고 휘트니산을 찾아 고산적응 훈련을 했다.

그리고 1996년 66세때 홀로 존 뮤어 트레일을 향했다. 처음엔 하루 5마일 걷기도 힘들었지만 막바지엔 18마일도 거뜬하게 걸었고 마지막날 1만4495피트 휘트니 정상에 올라 햇빛을 볼때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그동안 해온 고생은 다 잊었다고 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듬해에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하이 시에라 트레일을 열흘간 걸었고 98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종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산악회를 따라 히말라야의 아일랜드 피크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그리고 해발 8091m인 안나푸르나도 올랐다. 산악인들이 훈장처럼 내세우는 고봉들이지만 존 뮤어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걸어본 할머니에게 그건 편안한 공짜여행(?)이었다고 한다. "셀파가 짐 가져다주지 길 안내하지 그냥 걷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최 할머니는 무념무상 걷는게 더 좋았다. 그래서 2006년엔 전라도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민통선까지 한달간 우리국토를 가로지르는 종주를 했고 2007년엔 45일간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왔다. 프랑스 국경마을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까지 500마일 길로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란 책을 통해 세계적인 순례 명소가 된 곳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2008년엔 일본의 대표적 순례지로 시고쿠섬 88개 사찰을 잇는 1200km 길을 걸었고 제주도 일주도 했다. 그후 암발병 사실을 알게됐다.

"작년에 운동 안하고 게으름을 부렸더니 많이 아프더라구요. 암 수술을 한 뒤 2박3일씩이나마 가까운 산에 다니니까 병이 다 없어지는 느낌이었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딱 100마일만 더 걸었으면 좋겠다 하는 참에 병원에 갔더니 수술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수치가 다 정상이라길래 얼른 짐부터 꾸렸지요."

최 할머니는 6월22일 집을 나섰다. 지금 한참 산길을 걸고 있을 것이다. 석달 뒤 다시 만날 할머니는 또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몸은 비록 여기 있지만 마음으로는 할머니가 걷는 그 산길을 함께 걸어본다.

신복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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