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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고통에 맞서 이기는 법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인간은 고통을 싫어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피하려고 애쓴다. 육체의 고통은 그래도 어느 장기에서 어떻게 아픈지를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어서 어디로 가는지 정체가 무엇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를 사용했다. 좋은 예가 아이들이 급하면 쓰는 '부정 기제(denial)'이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니 요가 오줌으로 젖어 있다. 자존심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고통(?)을 참기 힘들다. "내가 싼게 아니야!"하고 부정해 버리면 마음이 편하다. 본인에 대한 분노도 수치감도 느낄 필요가 없다. 이는 쫓기던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적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심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숙하고 원초적인 방어기제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좀 더 성숙한 방어기제를 배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승화(sublimation)' 현상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동물적인 감정들 분노.공격성.질투심들을 그대로 표현하면 남에게나 나에게 고통이 뒤따른다. 대신 힘이 센 이웃보다 더욱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 놓는 것이 승화의 한 예가 되겠다. 아무리 밉더라도 그 강렬한 파괴적 에너지를 이웃에게 보였다가는 문제가 되니 사회에서 용납되는 방향으로 바꾸어서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바람직한 방어기제이다.



최근 32세의 체로키 인디언 후예를 진료하게 되었다. 경찰관인 남편과 15년간의 결혼 생활을 하며 많은 학대를 받았고 그 결과로 많이 우울했다고 한다. 그녀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골프를 치러 갔다가 갑자기 어지럽다면서 쓰러졌다. 그 순간의 앞뒤는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응급실에 들어온 것도 앰뷸런스에 실려온 것도 모두….

병실을 찾아서 가보니 그녀는 침대에 편히 앉아서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심한 고통의 모습은 전혀 안보였다.

"왜 병원에 입원이 됐느냐?" 고 물으니 모르겠단다. 그러나 집주소.전화 번호.직장 이름은 확실하게 외우고 있었다. 방문 중인 여동생의 귀띔에 의하면 환자는 바로 전날 아이들의 양육권을 전 남편에게 모두 빼앗겼단다.

2년 전 이혼 과정에서도 환자는 잠시 기억상실 증세를 보였었다. 일하다 말고 직장에서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울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는 아무 기억이 없었단다.

이 여인의 방어기제는 아마도 병적인 '억압(repression)'인 듯하다. 의식 위에까지 올라오면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이나 고통은 기억이 안되도록 억압해 버리면 살 수가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무리 속상하고 용납하기 어렵다해도 꾹꾹 눌러두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아마 그 당시의 삶을 모두 차단시켜 버리다 보면 슬픈 일들은 무의식의 늪 속으로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은….

다행히 그녀는 앞으로 정신과 외래를 통해서 상담 치료를 받기로 했다. 우선 자신을 존중하는 길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자신의 생에서 닥치는 고통도 눈을 똑바로 뜨고서 맞닥뜨려 해결을 하거나 안되면 그대로 받아들일 힘을 기르는 것이다.

힘들다고 억눌러 버리는 쉬운(?) 방어기제보다는 좀 더 성숙한 승화의 길을 찾아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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