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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할리우드의 '백인 칭기즈칸'

안유회 / 문화부문 에디터

또 '인종차별' 논란이다. 지난 1일 개봉된 영화 '라스트 에어벤더(The Last Airbender)' 이야기다.

논란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이었던 아시안과 아메리칸 인디언 캐릭터가 영화에선 백인 캐릭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유목민 세계는 물의 부족과 흙의 왕국 불의 제국 공기의 제국 4개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의 평화는 불의 제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깨지고 어린 영웅 아앙이 이에 맞서 싸운다. 아앙 역을 맡은 것은 백인 아역 배우 노아 링거다. 유목민이라는 점만 봐도 주인공이 백인이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많이 보던 구도다.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난세는 항상 백인이 구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인종차별 논란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다스탄 왕자 역은 당연히 아랍계가 맡아야 겠지만 실제로는 백인인 제이크 질렌할이 발탁됐다. 역시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백인이 구원한다.

'페르시아의 왕자'를 보면서 중학교 때 봤던 '정복자(The Conqueror)'가 생각났다. 1956년작인 '정복자'는 테무진이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칭기즈칸이 되는 순간까지를 다루었다. 놀라운 것은 영화 속에서 테무진을 연기한 배우가 존 웨인이었다는 점이다.

웨인은 가장 미국적인 장르라는 서부영화를 대표하는 가장 미국적인 배우로 꼽힌다. 그런 웨인이 유목 문명의 최대 영웅인 테무진을 맡았다. 당대의 섹스 심벌 수전 헤이워드가 테무진이 사랑한 타타르족의 공주 보타이를 연기한 건 오히려 당연하다.

'페르시아의 왕자'와 '정복자'만을 비교하면 1956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54년 동안 할리우드는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물으면 어떨까? 50년대에 존 웨인 급의 아시안 배우가 있었을까? 50년대에 아시안 배우를 주연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50년대를 2010년대로 바꾸고 과거형을 현재형으로 바꾸면 할리우드는 뭐라고 답할까?

판사가 판결로 말하듯 할리우드는 영화로 대답한다. '라스트 에어벤더'와 '페르시아의 왕자'는 대답한다. 54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No'라고.

유색인종을 보는 할리우드의 방식은 각론에서 방법적인 면에서 훨씬 세련되게 변했다. 하지만 총론과 핵심은 생각만큼 바뀌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영화도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이다. 영화사는 어떤 경우에도 흥행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유색인종의 모습은 현실에서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힘 만큼 영화에 반영될 것이다.

당위성이나 온정 사려깊음은 힘에 속하지 않는다. 켈리 리 ABC 방송 캐스팅 담당 총괄 부사장 배우 대니얼 대 김 '로스트'의 작가 크리스티나 김 같은 이들이 힘이다. 상영 영화관 앞에서 '라스트 에어벤더'의 인종차별에 항의한 민족학교의 시위가 힘이다. 느리게 느껴지겠지만 이미 시작된 변화를 앞당기는 힘이다.

변화가 오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본다. 중학교 때 '정복자'를 보면서 '백인 칭기즈칸'이 어색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백인'과 '칭기즈칸'의 불합치를 의식했다.

무의식적으로 수용된 시각은 대개 정치나 경제 등 다른 분야에도 투사된다. 그래서 '라스트 에어벤더' 논란은 "인종적 다양성을 가진 영화"라는 영화사의 해명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핵심은 인종의 다양성이 아니라 인종의 정확한 반영이다. '아시안 컬럼버스'가 아닌 것처럼 '백인 칭기즈칸'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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