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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좀 피워 볼까 … 조상의 지혜와 이야기가 담긴 부채

[조인스] 기사입력 2010/07/11 19:13

긴 살과 짧은 살을 마주 붙여 유연하게 만든 합죽선은 낭창낭창 휘어지며 주변의 공기를 끌어들여 소용돌이 바람을 일으킨다. 드라이아이스로 실험해 봤다.

긴 살과 짧은 살을 마주 붙여 유연하게 만든 합죽선은 낭창낭창 휘어지며 주변의 공기를 끌어들여 소용돌이 바람을 일으킨다. 드라이아이스로 실험해 봤다.

여름 생색은 부채요, 겨울 생색은 달력이라’. 옛 속담에 이런 게 있다. 물론 부채바람보다 더 시원한 쿨러가 하루 종일 돌아가는 요즘, 가슴에 확 와닿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가수 엄정화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춤추며 접었다 폈다 하는 소품으로 변신한 부채가 더 현실성 있게 보인다.

하지만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나던 옛 조상들의 DNA를 물려받은 탓일까. 아직도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광고 문구가 잔뜩 든 부채라도 덥석 받아드는 걸 보면, 여전히 부채에 대한 동경과 향수는 맘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즈음에 한번 생각해 봤다. 우리에게 부채란?

긴 살과 짧은 살을 마주 붙여 유연하게 만든 합죽선은 낭창낭창 휘어지며 주변의 공기를 끌어들여 소용돌이 바람을 일으킨다. 드라이아이스로 실험해 봤다.

값으로 말한다

과거 ‘합죽선(접는 부채)’은 기본 백미 한 섬 값은 쳤다. 또 어느 장인이 만들었느냐, 누구의 글과 그림을 받았느냐, 어떤 금은보화로 장식했느냐에 따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금도 전라남도 담양, 전라북도 전주 일대의 대나무·한지 산지를 중심으로 명맥을 잇는 장인들의 작품은 여전히 귀하게 대접받는다. 수집가들이 탐냈던 고 이기동 명인(합죽선)의 유작 ‘팔등황칠 낙죽선’은 호가가 2000만원에 달했다.

1000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는 황칠(황칠나무 수액으로 누렇게 칠한 것)을 하고 인두로 매화와 박쥐를 세밀하게 그려 넣은 120ⅹ80㎝의 큰 부채다. 부채 인간문화재인 선자장의 작품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에 이른다. 고 엄주원 선자장(합죽선)의 아들 엄재수 선생의 작품도 2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나간다.

우리 부채, 이렇게 생겼어요 1 태극선 우리 부채의 기본형인 ‘단선’의 일종이다. 사진처럼 가운데에 작은 태극 문양을 붙인 ‘알태극선’과 부채의 얼굴인 선면 전체를 태극으로 채운 ‘태극대원선’ 등이 있다. 2 미선 단선의 일종으로 조류나 어류의 꼬리를 닮아 ‘미선(尾扇)’이라고 한다. ‘나주 세미선’은 대를 가늘게 쳐서 총총하게 놓았다. ‘통영 미선’은 자루를 교묘하게 조각했고, 선면이 나주선보다 길쭉하다. 부채 윗부분만이 아니라 자루가 달린 부분에도 선녀 머리처럼 올록볼록하게 만든 것은 ‘선녀선’이라고 하며, 그보다 크고 자루가 선면을 가로지르는 건 파초 잎을 닮아 ‘파초선’이라고 부른다. 3 윤선 차바퀴처럼 360도로 펼쳐진 둥근 부채로 단선이나 접선(접는 부채) 모두에 있다.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보다는 크게 만들어 펼쳐 일산(양산)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의 ‘소윤선’은 접어서 가지고 다니다 부채질하거나 양산 대용으로 쓰도록 작게 만든 것이다. 4 합죽선 접는 부채를 대체로 합죽선이라고 하며, 사진의 ‘대모선’은 합죽선의 겉대에 대모(거북이 등껍질)를 장식한 고급품이다.

우리 부채, 이렇게 생겼어요 1 태극선 우리 부채의 기본형인 ‘단선’의 일종이다. 사진처럼 가운데에 작은 태극 문양을 붙인 ‘알태극선’과 부채의 얼굴인 선면 전체를 태극으로 채운 ‘태극대원선’ 등이 있다. 2 미선 단선의 일종으로 조류나 어류의 꼬리를 닮아 ‘미선(尾扇)’이라고 한다. ‘나주 세미선’은 대를 가늘게 쳐서 총총하게 놓았다. ‘통영 미선’은 자루를 교묘하게 조각했고, 선면이 나주선보다 길쭉하다. 부채 윗부분만이 아니라 자루가 달린 부분에도 선녀 머리처럼 올록볼록하게 만든 것은 ‘선녀선’이라고 하며, 그보다 크고 자루가 선면을 가로지르는 건 파초 잎을 닮아 ‘파초선’이라고 부른다. 3 윤선 차바퀴처럼 360도로 펼쳐진 둥근 부채로 단선이나 접선(접는 부채) 모두에 있다.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보다는 크게 만들어 펼쳐 일산(양산)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의 ‘소윤선’은 접어서 가지고 다니다 부채질하거나 양산 대용으로 쓰도록 작게 만든 것이다. 4 합죽선 접는 부채를 대체로 합죽선이라고 하며, 사진의 ‘대모선’은 합죽선의 겉대에 대모(거북이 등껍질)를 장식한 고급품이다.

요즘 시중에 나온 부채는 싸다. 한데 싼 부채에도 제 나름의 족보가 있다. 8000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면 중국산, 그 이상이면 중국에서 살 작업을 해오고 한국에서 천을 붙여 마감한 것으로 보면 된다. 크기가 작고 180도보다 각이 덜한 ‘부채꼴’로 펴지며 색색깔의 천을 대 화려하게 꾸민 것은 일본풍을 따랐고, 대나무 살을 여러 개 넣은 것은 한국풍으로 뒤섞어 만든 국적 불명의 제품이다.


우리 부채, 이렇게 생겼어요 1 태극선 우리 부채의 기본형인 ‘단선’의 일종이다. 사진처럼 가운데에 작은 태극 문양을 붙인 ‘알태극선’과 부채의 얼굴인 선면 전체를 태극으로 채운 ‘태극대원선’ 등이 있다. 2 미선 단선의 일종으로 조류나 어류의 꼬리를 닮아 ‘미선(尾扇)’이라고 한다. ‘나주 세미선’은 대를 가늘게 쳐서 총총하게 놓았다.

‘통영 미선’은 자루를 교묘하게 조각했고, 선면이 나주선보다 길쭉하다. 부채 윗부분만이 아니라 자루가 달린 부분에도 선녀 머리처럼 올록볼록하게 만든 것은 ‘선녀선’이라고 하며, 그보다 크고 자루가 선면을 가로지르는 건 파초 잎을 닮아 ‘파초선’이라고 부른다. 3 윤선 차바퀴처럼 360도로 펼쳐진 둥근 부채로 단선이나 접선(접는 부채) 모두에 있다.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보다는 크게 만들어 펼쳐 일산(양산)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의 ‘소윤선’은 접어서 가지고 다니다 부채질하거나 양산 대용으로 쓰도록 작게 만든 것이다. 4 합죽선 접는 부채를 대체로 합죽선이라고 하며, 사진의 ‘대모선’은 합죽선의 겉대에 대모(거북이 등껍질)를 장식한 고급품이다.

남자에게 부채는

부채에 사용하는 대나무와 한지는 모두 ‘음(陰)’의 기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부채를 ‘첩’이라 부르며 갖은 치장을 하고 애지중지했다고 한다.

조선조 선비들은 의관을 갖추고 합죽선을 찾아 쥐어야 외출을 했다. 거북한 상대라도 만나면 외면하지 않고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시조나 가곡창에 장단을 맞췄고, 괴한을 만나면 ‘탁’ 하고 막아냈다. 부채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선추에 금·은·비취·호박 등 각종 보화로 장식하는 등 사치를 부렸다. 부챗살이 50개인 ‘오십살 백접선’은 왕실 직계만 썼다. 사대부는 40살, 이하 중인과 상민은 그보다 살을 적게 넣어야 했다.

조선시대 풍류남아 임제는 부채에 다음과 같은 칠언절구를 적어 어린 기생에게 보냈다. “한겨울에 부채 선물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 너는 아직 나이 어리니 어찌 능히 알겠느냐만 / 한밤중 서로의 생각에 불이 나게 되면 / 무더운 여름 6월(음력)의 염천보다 더 뜨거우리라.”

여자에게 부채는

서민 여성들은 ‘단선(방구부채)’이라 불리는 평평하고 둥근 부채로 불도 일으키고 곡식도 걸렀다. 부들이나 왕골처럼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든 부채는 방석 대신 깔고 앉기도 하고, 짐을 머리에 일 때 똬리 대용으로도 사용했다. 여덟 가지 효용이 있다는 뜻으로 ‘팔덕(팔용)’이란 이름을 붙였다. 왕실의 직계 여성이나 시대의 자유인이었던 기생들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합죽선을 거침 없이 사용했다. 신분을 알리고 패션감각을 뽐내는 귀중품이었다. 오늘날의 ‘잇백’ 정도였달까.

참고문헌『빛깔있는 책들-전통부채』(금복현 저, 대원사 간)
사진제공 엄재수 선자장 이수자

글=이진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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