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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700년만에 핀 '고려 연꽃'

이종호/논설위원

한국인들에게 연꽃은 퍽 친근한 꽃이다. 불교 문화 때문에 익숙해진 탓도 있고 심청전.춘향전 같은 고전 속에서도 쉬 만나곤 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물 위에 피는 꽃은 널리 사랑을 받았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작품도 모네가 말년에 그린 대작 '수련'이라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연꽃과 수련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꽃이다. 수련은 잎이 수면에 떠 있는 부엽식물이지만 연꽃은 잎이 물 위로 쑥 올라와 있다. 수련 잎은 물에 잘 젖지만 연꽃은 강한 발수성으로 물방울이 투명구슬처럼 또르르 굴러 다닌다. 연꽃은 뿌리는 연근으로 씨앗도 약용으로 먹을 수 있지만 수련은 먹을 수 없다는 것도 차이다.

더 큰 차이는 꽃이다. 물 위로 꽃봉오리만 살짝 내밀고 피는 수련 꽃은 꽃잎이 작고 수가 많으며 색깔이 화려하다. 반면 연꽃은 수면 높이 피며 빛깔도 훨씬 단아하고 은근하다.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돈이(1017~1073)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의 우아함을 이렇게 읊고 있다.

"진흙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며 속은 비고 밖은 곧되 덩굴도 가지도 치지 않는다.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으며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아야 참맛을 느끼게 하니 정녕 꽃 가운데 군자로다."

연꽃 이야기가 길었던 것은 얼마 전 내 눈을 의심케 하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2009년 경남 함안 아라가야 산성 터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년만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연꽃의 부활을 전하는 기사는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감동이다.

"아침 햇살이 살갗에 와 닿자 분홍색의 뾰족한 꽃봉오리는 생명력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붙어 있던 꽃잎 중 하나가 살짝 몸을 젖혔다. 그게 시작이었다. 꽃잎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갈 때마다 봉오리는 미세하게 부풀었다. 예민한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신비한 개화! 숨죽이며 지켜보는 눈길들이 부끄러운 듯 봉오리는 쉽사리 몸을 열지 않았다. 그러기를 네 시간 여 마침내 연꽃은 700년 세월을 뛰어넘어 꽃잎을 모두 벌리고 만개했다."

지난 7일 새벽의 일이었다. 그 순간 함안박물관 뜰에 가득했을 긴장감과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 인터넷도 난리였다. 고려 연꽃의 부활을 전하려는 네티즌들은 부지런히 사진도 퍼 날랐다. 신기함을 넘어 경외감으로 그 사진들을 봤다.

과연…. 고려 불화나 옛 연등 같은 데서 봐 오던 바로 그 꽃이었다. 고졸하고 단출하며 청초한 빛깔. 꽃잎 끝에 은은히 감도는 붉은 기운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도도했고 기품이 넘쳤다.

그 연꽃은 '아라홍련'으로 불릴 것이라 한다. 씨앗이 출토된 지역이 고대 아라가야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앞으로 그 일대에 연꽃 테마공원도 만들어 진단다. 한국에 스토리를 간직한 또 하나의 관광 명소가 생기게 된 것이다.

연꽃의 꽃말은 순결 청순한 마음이다. 또 '아무 것도 없다'는 무(無)의 뜻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을 연꽃에 빗대기도 했다. 그렇지만 고려 연꽃의 부활을 보니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그 긴 세월을 견디고 이렇게 다시 꽃을 피워 냈는데 어찌 아무 것도 없단 말인가.

문득 우리의 말과 행동도 어느 것 하나 그냥 땅에 떨어져 묻히고 마는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700년 만에 다시 피어난 연꽃처럼 우리의 자취 또한 10년 뒤 100년 뒤 그렇게 드러나지 말라는 법은 없겠기 때문이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지만 빈손으로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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