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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말이 칼이 되는 세상

김완신/논설실장

말의 힘은 강하다. 역사의 큰 줄기를 바꾸기도 하고 한마디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가져오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연이어 실언이 터져나오고 있다. 얼마전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고 최근에는 현직 국어교사인 EBS 수능강사가 인터넷 강의를 하면서 군대 비하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교사는 "남자는 군대에 가서 죽이는 것을 배워 온다"며 "처음부터 (죽이는 것을) 안 배웠으면 세상은 더 평화롭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50여년간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던 헬렌 토머스 기자가 "이스라엘은 당장 팔레스타인에서 나가라"는 말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강의원은 성희롱 발언으로 정치 생명마저 위태롭게 됐고 여자 교사는 EBS로부터 출연정지를 당했다. 강의원의 한순간 말실수가 그동안 쌓아왔던 정치가로서 입지를 무너뜨렸고 여교사는 교육자로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헬렌 토머스 기자도 불명예 퇴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상 여러 말실수가 있었다. 그중 냉전시대의 종말을 가져왔던 베를린 장벽 붕괴는 '말의 힘'과 '말실수'가 가져 온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전인 1987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 앞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시오"라고 연설했다. 장벽의 붕괴는 역사의 수순이었지만 사학자들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한마디가 역사를 바꾼 힘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굳건한 벽이 말의 위력 앞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장벽이 갑작스럽게 붕괴된 이면에는 당시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샤보브스키의 '말실수'가 있었음을 보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샤보브스키는 1989년 11월 동서독간 국경통과 문제와 관련해 연일 시위가 계속되자 동독인들의 해외여행을 편하게 하기 위한 동독정부의 조치를 발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새로운 조치가 언제부터 시행되느냐고 물었고 회견 당일 발표문을 받아 정부정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샤보브스키는 "당장 지체없이 시행된다"고 엉뚱한 말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일부 기자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타전했고 장벽 주변에는 동서독 주민들이 몰려와 벽을 허물 것을 외쳤다. 결국 한번의 말실수로 1961년 세워져 동서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급속히 무너져

역사의 유물로 남게 됐다.

샤보브스키의 말실수는 역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지만 대부분의 말실수는 파멸을 초래한다.

논어의 '안연편'에는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는 경구가 나온다. '4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소문의 빠름을 비유하지만 한번 한 말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해 삼가야 한다는 경계의 의미도 들어 있다.

고려말과 조선시대 역사 속 인물들의 실언을 소설로 구성한 이경채의 작품 '설화 역사를 뒤바꾼 치명적 말실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유능한 지도자는 자신의 말에 감정을 싣지 않는다. 거짓말을 영원히 진실로 믿게 하는 것은 신뿐이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라." 이는 시대를 관통해 변하지 않는 언변의 바른 지침이다.

우리는 '4마리 말이 끄는 수레'가 아니라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다. 남을 해하고 자신의 몰락을 가져오는 실언을 전달하는 것은 '수레'보다 빠른 '인터넷'이다. 생각없이 입에서 떨어진 말 한마디가 칼이 돼 발등을 찍는 시대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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