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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박찬호, 그대는 충분히 잘했다

[LA중앙일보] 발행 2010/08/05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0/08/04 18:33

이종호 논설위원

그저께였던가. 신문을 보다가 한참 동안 눈길을 멈추게 한 제목이 있었다. '저기 가는 세월 여기 저무는 찬호.' 박찬호 선수가 뉴욕양키스에서 사실상 방출되었다는 소식의 기사였다.

메이저리그 통산 122승. 아시아 출신 최다승에 불과 1승 차이로 다가선 기록이다. 하지만 대기록을 목전에 두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자신을 마운드에 올려줄 팀을 찾는 신세가 되었음을 신문은 말하고 있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꿈 하나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양키스를 선택한 박찬호였다. 하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상과 성적부진으로 시즌 중간에 전격 쫓겨나게 된 것이다. 나이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1973년 6월29일생. 이제 37세여전히 팔팔한 나이다. 그러나 야구선수로서의 전성기는 한참 지났고 프로 정년이라는 30대 중반도 넘어섰다. 40이 넘어서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흔하지는 않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천하의 박찬호 역시 쇠퇴하는 체력 앞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라는 기사의 행간엔 가슴이 울컥했다.

한 시절이 가고 또 한 세대가 올라오면 가뭇없이 자리를 비워 주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일진대 세월의 속절없음을 탓하는 것은 부질없다. 그보다는 흐르는 시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어쩌다 TV에서 50~60대 나이에도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30대 얼굴을 한 여배우들을 대하는 것은 얼마나 어색하고 곤혹스러우며 민망한가.

'체력이 떨어지고 구위가 약해졌다는 사실에 낙담하진 말자. 더 이상 빅리거로 뛸 수 없다 한들 그게 뭐 대수인가. 이미 난 내 나이의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한 고난도 좌절도 그 이상의 기쁨도 영광도 맛보지 않았는가.'

나는 박찬호 선수가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는 아직 너무 젊고 가야할 길 배워야 할 일 가슴 뛰게 할 새로운 목표들이 얼마든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먹어 잃는 것도 많지만 반대로 나이를 먹어 얻는 것도 많다. 이론이나 학식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살아가면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그것이다. 경험.지혜.신뢰.관계의 소중함.가족사랑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박찬호 선수가 이번 기회에 이 또한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의 목표는 삼진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며 20승도 아니고 비록 공 하나지만 1구 1구에 집중해 제대로 된 스트라이크 하나를 잡는 것이다."

전성기 시절 박찬호 선수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정말 그는 그렇게 살았다. LA다저스 이후 텍사스-샌디에이고-뉴욕 메츠- 다시 LA 다저스- 필라델피아-뉴욕 양키스 등을 떠돌았지만 어느 한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넘어지면 일어섰고 또 넘어지면 또 일어섰다. 다만 무심한 세월이 화려했던 영광을 더는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박찬호 선수가 이번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빅리거로 다시 뛰게 되지 못 하더라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팬들 역시 아쉬워는 하겠지만 이쯤에서 마운드를 내려온다고 해서 비난하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꿈으로부터 끊임없이 배반당하면서도 또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 인생이다. 17년 메이저리그 생활을 통해 우리에게 이를 일깨워 준 것만으로도 박찬호 선수는 충분히 소임을 다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새 팀을 찾게될지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될 지 지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렇게는 말해주고 싶다.

"열심히 달려온 그대 더 이상 최고가 아닌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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