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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모래밭에서 '새미 리 광장'까지

[LA중앙일보] 발행 2010/08/09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0/08/08 16:25

안유회/문화부문 에디터

인종차별 당연시 되던 때, 불굴의 의지로 '인간승리'…진정한 영웅으로 기억해야
"보잘 것 없는 소수계 이민자 자녀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시절이 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6일자 본지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은 시선을 잡아당겼다. 1면 왼쪽 상단에 실린 사진의 중앙엔 한 노인이 위를 바라보고 있다. 닥터 새미 리다.

새미 리 박사는 전날 LA 한인타운의 한복판인 올림픽과 노먼디에 있는 다울정 앞 행사에 주인공으로 섰다. 다울정 앞 공간을 자신의 이름을 따 '새미 리 박사 광장'(Doctor Sammy Lee Squre)이라고 명명하는 행사에 참가한 것이다.

"보잘 것 없는…"이라는 말은 닥터 리가 이날 행사에서 토로한 말이다. 스스로 '보잘 것 없는'이라고 표현한 그를 한인들은 영웅이라고 부른다.

닥터 리는 1920년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였던 한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두살 때이던 32년 다이빙에 관심을 보인 그는 1948년 런던올림픽 3미터 스프링보드 다이빙에서 동메달을 10미터 플랫폼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10미터 플랫폼 경기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는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딴 첫 아시안이면서 플랫폼 다이빙에서 2연패를 거둔 세계 최초의 선수다.

그가 다이빙에 관심을 보인 해는 1932년. 인종차별이 합법적이던 시절이다. 금메달을 딴 48년과 52년은 미국에서 소수계 차별에 항의하던 민권운동이 일기도 전이다. 그 시절 소수계가 올림픽 출전이나 금메달 수상은 고사하고 수영 그 중에서도 다이빙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당시 유색인종은 수요일에만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코치를 만난 뒤에도 다이빙 연습을 모래밭 위에서 했다.

수영은 올림픽 종목 중에서도 유색인종의 진입이 가장 늦었던 분야다. 장비나 설비가 필요한 종목에서 나타나는 흔한 현상이다. 다이빙은 최근 중국이 휩쓸고 있지만 수영은 여전히 유색인종이 불리한 종목이다. 한국에서 최근에 수영 영웅 박태환이 탄생한 것을 생각하면 닥터 리가 거둔 성과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를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꼭 금메달리스트라는 2연패라는 기록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환경 속에서 다이빙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치뤄야 했던 눈물과 설움 그래도 꺾이지 않았던 의지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모의 뜻을 따라 이비인후과 의사 '닥터'가 됐다.

"보잘 것 없는 소수계 이민자 자녀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시절이 올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 말 속에는 과거와 현재 그 사이 오랜 세월의 많은 것이 녹아 있을 것이다.

닥터 리 광장 명명식이 열린 다음 날인 6일 김연아가 LA에 왔다. 한 사람은 한인 2세 또 한 사람은 한국인. 둘다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불가능의 벽을 깬 영웅이다. 두 사람의 성취는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런 두 사람이 하루 차이로 LA에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닥터 리 옆에 김연아가 서 있었다면…. 수요일에만 수영장에 갈 수 있었던 아니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수요일이 아니면 수영장 출입을 금지당했던 90세의 한인 금메달리스트 옆에 '동양인은 피겨는 안 돼'라는 생각의 족쇄를 깨버린 금메달리스트 김연아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루 차이인데.

90세의 영웅은 이런 말도 했다.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잊혀진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그렇게 영웅은 영웅을 낳는다. 올림픽과 노먼디를 지날 때 아이들에게 말하자. 모래밭에서 다이빙을 연습하고 금메달을 딴 사람이 있다고 그가 한인이라고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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