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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대통령에게 막말하기

[LA중앙일보] 발행 2010/08/12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0/08/11 20:50

이종호/논설위원

지지나 평가 여부를 떠나 최소한의 예우는 하는 것이 민주 국가의 시민된 도리
다민족이 어울려 사는 미국에서 정치와 종교 그리고 금전 상의 화제는 상식적으로 금기시 되어 있다. 정치는 오해나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종교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도 그렇게 됐단다. 정치나 종교는 물론이고 빈부차 세대차가 갈수록 깊어져 무슨 말을 꺼내기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한인 사회도 마찬가지다. 논란이 될만한 이슈에 대해 혹시라도 잘못 말했다간 한 순간에 상종 못할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저런 인터넷 사이트나 블로그 등을 한 번만 둘러봐도 이는 금세 확인이 된다. 화기애애하던 온라인 공간도 4대강이니 세종시니 하는 한국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돌변한다. 누군가 올린 글이 조금만 오른쪽이다 싶으면 '친일파.매국노.수구꼴통'으로 또 조금만 왼쪽이다 싶으면 '빨갱이.노빠.좌빨' 식의 비난과 욕설로 댓글 도배가 된다.

사람들을 극한으로 갈라 놓는 것은 정치 현안만이 아니다. 일제 청산을 둘러싼 친일 문제도 8.15 무렵이면 꼭 되풀이 되는 이슈다. 남북문제나 통일에 관한 시각 차이도 타협이 되지 않는다. 거기다 근대화와 민주화에 대한 평가 문제 나아가 박정희.김대중.노무현 같은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도 끝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파당짓기에 익숙한 우리의 민족성 탓이라며 자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자기혐오야말로 분열 그 자체보다 폐해가 크다. 민족을 비하하고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자포자기의 바이러스가 이런 생각들로부터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뿌리깊은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 탓일 수도 있겠다. 일본학자 시데하라 히로시가 1907년 '한국정쟁지(韓國政爭志)'에서 내세운 '당파성'이 그것이다. 그는 조선의 정치사를 당쟁의 역사라는 부정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당파성에서 비롯된 한국인의 분열적 민족성 때문에 조선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헛소리가 10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우리의 의식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분열과 대립은 우리만 유별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도 이민.낙태.동성애.의료보험 문제 등 민감한 이슈는 첨예하게 국론이 갈린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의견이 달라도 사생결단 상처를 주거나 막보자는 식으로 '사네 못 사네'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태도 역시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한 닉슨 대통령조차 번듯한 기념관이 있고 때마다 철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가는가.

공과에 대한 평가나 지지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라면 최소한의 예우는 해야 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시민된 도리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지 내가 찍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만의 대통령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과 의견은 누구나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세상이다.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상종 못할 별종으로서가 아니라 나와는 다른 사람일지언정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합리요 공리며 민주주의다.

오늘(12일) 전남 무안에서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그의 동상이 제막된다. 이 소식이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선 차마 옮기지 못할 막말들이 또 한바탕 오갔다.

"한국 사람으로서 박정희.김대중 대통령 두 분을 동시에 존경하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요?"

한국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는 어느 20대 젊은이의 이런 질문에 기성세대는 정말 부끄러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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