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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우리가 허물어야 할 불신의 벽

[LA중앙일보] 발행 2010/08/19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0/08/18 19:00

이종호/논설위원

기회의 땅 자바시장, 사라지지 않는 잠적 사태…수많은 피해자들 허탈·분노
불황은 사람들의 심성마저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다. 등 따뜻하고 배 부르면 절로 인심난다 했는데 요즘은 거꾸로다. 서로 믿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모든 게 경쟁인 살벌한 현장. 바로 LA 다운타운 자바시장 사람들이 요즘 느끼는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자바라는 말은 원래 일용직 노동자를 뜻하는 '자버(Jobber)'의 한국식 발음에서 비롯됐다. 1970년대 유대인이 이곳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 의류.봉제 공장에 일용직 노동자가 많았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곳엔 대략 수천 개의 의류관련 업체와 1500개 이상의 도매점포가 몰려 있다. 그 중 70% 이상이 한인업소라고 한다.

어떤 형태로든 자바시장을 통해 생계를 꾸리는 한인 수는 2만명 정도가 될 거라고 업계는 추산한다. 주변 식당과 병원 기타 관련 업종까지 포함하면 10만명이 넘을 거라고도 본다.

그런데 그 많은 자바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자바는 거칠다 믿을 수 없다 남을 밟아야 내가 산다' 와 같은 말이 그것이다. 정작 본인도 자바시장에서 일하면서 다른 자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얘기하는 이런 심리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어제까지 멀쩡히 영업하던 업소가 밤새 문을 닫는다. 업주는 한국이나 타주로 야반도주하고 없다. 어떤 경우엔 고의로 부도를 내거나 파산을 하고 상호만 바꿔 다시 영업을 하기도 한다.' 잊을만 하면 또 들려오는 이런 뉴스들이 그들을 우울하게 하고 결국은 마음의 빗장까지 닫아 걸게 만든다.

자바시장은 생산은 물론 수입.도매.소매 등 유통이 동시에 이뤄지는 곳이다. 매뉴팩처나 도매회사를 중심으로 원단이나 부자재를 공급하는 업체 하청을 받아 옷을 만드는 봉제업체 운반을 담당하는 물류업체 등이 촘촘히 얽혀서 돌아간다. 서로가 하청업자이며 발주자이고 고객이다. 그래서 어느 한 업체가 문이라도 닫으면 관련업계 가 함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지난 주에도 의류 수입중개업을 하던 한인 업주가 거액의 물품대금을 떼먹고 잠적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인터넷에는 이 기사에 대한 많은 댓글이 올라왔다. 그 중에는 잠적한 업주를 비난한 것도 있었지만 자바시장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글도 의외로 많았다. 만약 자바시장서 업주들이 위선.사기.양심불량.착취.부도덕 같은 단어로 도배가 된 그 댓글들을 봤다면 필경 또 한 번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바 사람들만큼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한인들도 없다. 웬만한 중소기업 뺨치는 매출 업체 또한 즐비하다. 어떤 의류 업체는 자바에서 힘을 길러 전국에 수백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유수의 메이커가 됐다. 그곳에서 실력을 다져 한국으로 진출한 업체도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무수한 업체들이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예전 같지 않다해도 여전히 자바에 돈이 돌고 여전히 자바에 일자리가 있다. 인생역전 '한방'의 기회 역시 여전히 그곳에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거칠고 험한 곳이라 비난하면서도 한인들이 계속 자바시장으로 몰리는 까닭이다.

자바시장은 한두 마리 미꾸라지 때문에 흐려지는 작은 물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할 일이 있다. 받을 것 받고 줄 것 제 때 주는 풍토의 정착이다. 믿고 거래한 사람을 멍들게 하는 병폐 또한 없어져야 한다.

자바시장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은 자바시장 사람들이 앞장서서 걷어내야 한다. 그곳은 나와 내 가족을 먹여살리는 고마운 일터이자 한인들에게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키우는 희망의 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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