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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그림 속에만 남아있는 평화

김완신/논설실장

오래 전 한 문인의 집을 취재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책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단아한 실내도 인상적이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거실 벽에 걸려있던 그림이었다. 색이 없는 굵은 먹선으로 그려진 작품에는 불어로 '전쟁은 끝났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림의 내용은 단순했다. 한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작품이었다. 화려한 배경도 없이 엄마에게 안겨 평화롭게 잠자는 아기를 커다란 화폭에 그린 것이 전부였다. 작품을 보면서 제목처럼 '전쟁이 끝났을 때' 찾아오는 평화가 바로 그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십수년이 지난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미군의 마지막 전투부대가 이라크 남부 국경을 통과해 쿠웨이트를 향하고 있는 장면을 신문에서 보면서였다. 이라크에 주둔했던 최후의 전투부대가 지난 19일 쿠웨이트로 이동하면서 전쟁반발 7년5개월만에 이라크 땅에 미군 전투병력이 완전히 철수하게 됐다.

AP와 CNN 등 언론은 이날 일제히 '최후의 전투부대가 이라크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전투병력은 떠났지만 내년까지 잔류하는 비전투부대원 5만명은 다음 달부터 이라크군의 훈련과 자문을 담당하는 '새로운 새벽(New Dawn)'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2003년 3월20일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전쟁은 시작했다. 4월9일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됐고 한달 후 5월1일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유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이라크가 세계 안보를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2004년 미국의 조사단은 최종 보고서를 통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명분도 확실하지 않은 전쟁은 개전 40여 일만에 공식적으로 끝났으나 그후로도 전투는 계속돼 왔다. 미군 전투병력이 철군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크고 작은 폭탄테러가 이어지고 파괴된 사회시설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철군이 시기상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쟁은 필요악이라고 흔히 말한다. 정의와 자유 그리고 해방이라는 거창한 구호로 전쟁은 시작된다. 전쟁 당사국들은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스스로는 '선'을 자처한다. 악을 물리쳐 선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항상 선과 악의 대립 구도로 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설령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물리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은 선을 정당화하지 못했다.

2차대전 당시 영국군 원수였던 버나드 로 몽고메리는 저서 '전쟁의 역사'에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밝히고 있다. 몽고메리 장군은 2차대전 때 연합군 사령관을 맡아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졌던 롬멜 장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인간의 지니는 야수성이 가장 극렬하게 표출되는 것이 전쟁이라고 말한다. 군인이면서 작가였던 그는 "군인이 진정 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적군이 아니라 인간 안에 존재하는 야수다. 군인으로서 나는 반목과 싸움이 없는 하루가 금빛 노을에 지는 날을 기대한다. 그리고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새 날에는 평화의 기상 나팔 소리가 울리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테러와 내전으로 얼룩진 지구 곳곳에서 아직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기원하며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지만 평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평화는 오래 전 그림 속에 무채색으로 그려진 엄마와 아기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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