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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삶나의길]노인학전문가 이혜선씨

황혼빛은 아름답다.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요람의 빛이고 지난 날의 일상을 되살려주는 추억의 빛이다.

인생의 황혼도 아름답다.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면서 삶의 폭이 가장 넓어지는 시기다. 많은 것을 포용하며 사랑의 귀중함을 알고 실천하는 시기이며 사욕을 버리고 삶을 깨끗하게 정리하고자 하는 시기이다.

노인들은 젊은이를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지나온 세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노년을 이해할 수 없다. 나이가 들어 늙어야만 터득할 수 있는 인생의 구석구석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입장에 있는 노년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버지니아주 비엔나에 사는 이혜성(55)씨는 노인학 전문가다. 노던 버지니아 노인문제 전문위원회(Long Term Care Task Force)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약하고 있다. 이 지역 페어팩스 카운티에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유일한 아시아계 전문위원인 이혜성씨는 한인커뮤니티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있다.



이혜성씨는 이민인구가 많은 남가주 지역의 노인문제와 노인정책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주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다.

“우리 위원회에서는 노인들에 대한 여러 분야의 자료수집, 서비스의 필요성, 현재 서비스가 부족한 분야, 재정문제, 방향설정 등을 검토해 정부당국이 정책으로 수립하도록 권장안을 제출하게 됩니다. 양로원 운영방법, 지역사회에 필요한 서비스, 장애인과 병약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관리하는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게 되지요. 저는 유일한 아시아계 위원이기 때문에 한인커뮤니티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국가들도 대표하게 됩니다. 아시아계 이민 커뮤니티는 문화배경이 다르니까 가치관의 차이, 습관의 차이, 언어장애로 오는 어려운 점 등을 정부당국에서 배려해 주도록 요청할 계획입니다. 페어팩스 카운티내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10%가 넘습니다. 정부가 아시아계 노인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주류사회에서 노인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만큼 이민사회, 소수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혜성씨는 이민사회를 대표해서 이민 커뮤니티의 노인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한평생을 살면서 우리가 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노년시기입니다. 자녀문제에서, 경제문제에서, 사회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자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위해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때지요. 노후를 뜻있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인생의 노년이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훨씬 더 의미있고 아름다운 생의 마지막을 꾸려갈 수 있 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노인이고, 친척 어른들이 노인이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나이든다(가령·加齡·Aging)’‘늙는다’는 것을 긍정적이고 올바르게 받아들이면 누구나 아름다운 노년을 보낼 수 있다. 노년을 값지게 보낼 때 자신의 온 생애를 만족스럽게 마무리지을 수도 있게 된다.

사람이 살고 있는 한 나이는 들어가게 마련이다. 나이들어가는 과정과 현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노인학(Gerontology)이다.

노인학에서는 인간의 가령(Human Aging)을 넓은 의미로 3분야로 나누게 된다. 육체적 변화, 정신적 변화, 정신력, 가치관에 따른 사회적 변화다.

노년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으로 질병이나 질병과 관련한 위험률이 낮아야 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신이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일상생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건강하게 살겠다는 뜻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 세가지 조건 외에 만족할만한 수입이 있고 건강하고 정결한 환경을 유지할 능력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만족스런 관계가 형성되어있고 내일에 대한 기대감 등이 갖추어져 있으면 최상의 노년기를 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혜성씨는 서울여자 대학교에서 식품가공학을 전공했고 1971년 디트로이트 하퍼 하스피틀에 영양사 인턴으로 도미했다. 1972년부터 8년동안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센인트 매리 하스피틀에서 임상 영양사로 근무한 후 다시 페어팩스로 옮겨서 페어팩스 하스피틀 암 방사선과에서 임상 영양사로, 또 앨릭잰드리아 하스피틀 노던버지니아 암센터에서 임상영양사로 근무하며 암환자들의 영양관리를 책임맡았었다.

“이런 일을 하다보니 자연히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인생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적인 노후를 준비하는 것일까, 삶을 마칠 때까지 인간으로서의 위상을 잃지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늦은 나이지만 노인에 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나이 50을 목전에 두고 이혜성씨는 노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것이 1995년이고 96년부터 매릴랜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들어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논문만을 남겨놓고 있다.

“노인학을 공부하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했었습니다. 교회안에 한인 중앙 시니어 센터 문을 열었지요. 처음에는 주로 소외되어 있는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드리기 위해 레크레이션과 영양분이 배려된 점심을 제공했습니다. 외로움은 모든 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노인들에게는 외로움을 덜어드리는 게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입니다. 처음 교회 노인분들 60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인근에 계신 분들이 많이 오셔서 모두 2백20명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한인 중앙 시니어 센터는 지금도 계속 교회안에 있다. 회원들은 4개월에 등록금 20달러를 내는데 이 돈은 교과서와 자료비로 사용되고 그외는 자원봉사자와 카운티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그램은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2시에 끝난다. 3대의 교회 밴과 3대의 카운티 밴, 노인센터 자체 밴, 자원봉사자의 자동차 등으로 교통편이 해결되고 있다.

에어로빅 교실과 영어교실, 싱얼롱, 도자기 교실 등이 있고 글쓰는 법을 배우는 클래스가 있다. 자신의 인생을 글로 남겨놓고 싶어하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도자기 교실에서 만든 작품으로는 학년말에 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이외에 가끔 사회복지법이나 건강 문제에 대한 특강이 있다. 점심은 한국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한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분들이 생의 마지막 시기를 한국음식을 먹으며 한국말로 대화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이혜성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온 정성을 바치고 있다.

“한인 노인들은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계신 분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입장인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지내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건 페어팩스나 로스앤젤레스뿐만 아니라 미국내 전국의 한인커뮤니티가 비슷한 상황이에요. 저는 낯선 나라에 와서 사시는 한인 노인들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데에 보람을 느낍니다. 뿐만아니라 노인들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삶의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저 자신이 내적으로 풍부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생활을 택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우리들의 선배 노인들은 권세와 부, 젊음, 안정, 사회적인 지위 등을 뒤로 하고 그 연세에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려고 노력하며 사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연세드신 분들을 통해서 진실한 의미의 삶을 배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늙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거지요. ”

1992년에 버지니아주 렛츠링크에이지스(Lets Link Ages)는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치하해 이혜성씨에게 ‘개척자 성공상’을 주기도 했다.

이혜성씨는 치과의사 이기동(56)장로와의 사이에 제니퍼(22·워싱턴 대학 메디칼스쿨), 스완(17·11학년) 두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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