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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디지털 시대 종이책의 운명

이종호/논설위원

중앙일보 오피니언면 한 면은 대략 4500자의 글자로 채워진다. 사진이 들어가는 다른 면은 이보다 적은 3000~4000자다. 모든 지면을 꼼꼼히 다 읽는 독자가 아니라면 하루 30분쯤 신문을 볼 경우 대략 2만자 정도의 글자를 읽게 된다.

또 요즘 나오는 단행본 책의 한 페이지 글자 수는 500~600자다. 보통 속도로 30분쯤 읽을 경우 역시 2만자 정도 읽는다. 말하자면 하루 1시간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이라면 4만~5만자의 활자소비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신문이나 책을 매일 1시간씩 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무직 종사자의 경우 거의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한 두 시간은 보통이다. 거기에 10대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를 달고 산다. 쉴틈없이 주고받는 휴대폰 문자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이미 신문이나 책같은 종이보다 인터넷과 연결된 디지털 기기로 훨씬 많은 글자를 읽고 있을 수도 있다.

놀랄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네그로폰테 교수도 인정했다. 지난 8월 레이크 타호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그는 종이책의 종언을 선언했다. 그것도 5년 이내에 바로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올들어 인터넷서점 아마존은 판매량에서 전자책이 종이책을 앞섰다고 한다. 전자책? 아직은 생소한 단어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일본의 IT전문 저널리스트 사사키 도시나오는 최신 저작 '전자책의 충격'(커뮤니케이션북스 2010) 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전자책 생태계는 완성됐다. 아이패드나 킨들이라는 전자책에 적합한 기기가 이미 등장했고 그것으로 쉽게 책을 사고 읽을 수 있는 플랫폼도 애플이나 아마존 구글에 의해 확립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선 지금과 같은 출판 비즈니스는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미래학자나 출판 전문가들이 예측하는대로 정말 종이책은 사라지고 말까. 수천 년 사랑받아온 종이책이 그렇게 간단히 소멸될 것이라 단정하진 못하겠다. 그렇지만 지독한 아날로그 세대를 자처하는 나 역시 이미 종이 글자보다 훨씬 많은 텍스트를 모니터로 보고 있으니 그러지 않으리라는 단언 또한 못하겠다.

최근의 경험 하나. 얼마전 인터넷으로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노인과 소녀의 사랑 심리를 그린 '은교'라는 박범신의 신작이었다. 작가의 블로그를 즐겨찾기에 등록해 두고 새 글이 올라왔는지 수시로 들러보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연재글마다 수십개 씩 달려있는 독자들의 댓글과 작가의 답글을 함께 읽고 가끔씩 한마디 거들기도 한 것은 종이책을 읽을 때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이 정도는 초보단계의 온라인 책읽기다. 하지만 이런 경험 만으로도 종이 책에 대해 그동안 지켜왔던 충성도가 약화되기엔 충분했다. 나 역시 기회만 오면 언제든지 전자책으로 옮겨갈 준비가 되어 있는 전자책의 잠재독자임을 확인한 것이다.

한 때 라디오는 죽었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라디오는 버젓이 살아있다.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보기술이 발달하고 완벽한 전자책이 나오더라도 종이책 특유의 냄새와 질감까지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종이책이라야 책장에 꽂아두거나 무시로 펼쳐볼 수가 있다. 눈에 띄게 오랜 시간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종이책이어야 한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종이책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아날로그 세대의 순진한 소망일지 모른다. 언제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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