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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칠레 광부들의 '에스페란사'

[LA중앙일보] 발행 2010/10/20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0/10/19 18:44

김완신/논설 실장

희망은 막장 고통 이기는 힘…다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기대가 감동 드라마 만들어
지난주 칠레 광부 33명의 구출 소식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최악의 광산 비극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던 이번 매몰 사고는 두달여 만에 광부 전원이 생환하면서 '기적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지하 700미터의 갱도에서 그들에게 삶의 의지를 잃지 않게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8월5일 광산이 매몰된 후 생존 사실이 지상에 알려지기까지 17일 동안 그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광부들은 대피소에 비축된 비상식량을 절약하기 위해 과자 반개 생선 1스푼 우유 반 컵 만으로 48시간을 견뎌야 했다. 살아남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 주어진 것이다.

적당량의 음식이 공급돼야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음식의 절대량이 부족했던 그들은 어두운 갱도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돌아와 땅을 디뎠고 그들의 목숨을 지탱해준 것은 '식량'이라는 물질이 아니었다.

구호단체 '월드비전'에서 활동했던 한비야가 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기아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아프리카 잠비아.말라위 지역에서 그녀가 구호활동을 할 때였다. 굶주림과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월드비전이 씨앗을 준비했지만 충분한 양을 확보하지 못했다. 한 마을에는 씨가 뿌려졌지만 다른 마을에는 씨가 공급되지 않았다.

씨를 심은 지역 주민들은 수개월 동안 들판만 바라보며 수확을 기다렸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싹이 돋지 못해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결국 씨를 뿌린 마을이나 뿌리지 못한 마을 주민 모두 생명을 연장시켜 줄 식량을 전혀 갖지 못했다.

그러나 씨를 파종한 후 수확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마을에서는 1명의 아사자도 발생하지 않은 반면 씨앗이 없었던 마을에서는 굶어죽는 주민들이 속출했다. 씨앗이 바로 희망이었고 그런 희망이 기아를 이기는 힘이 됐다.

칠레 광부들도 처음에는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했다. 삶의 출구가 없는 공간에서 패를 나누어 싸우기도 했고 반목과 질시의 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생존을 향한 의지도 잃은 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져 갈 수밖에 없었다.

암흑의 시간이 지나 지상과 연락이 닿으면서 다시 땅에 서리라는 희망을 갖게 됐고 그런 희망이 불씨가 되어 생존의 의지를 되살리기 시작했다.

헛된 희망은 환상에 빠지게 하지만 생사의 경계선에서 삶을 담보한 절실한 희망은 고통을 이겨내는 용기를 준다. 물과 식량이 절대 부족한 칠흑의 밀폐 공간에서 더위와 살인적인 습도를 견디게 한 것은 바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광부들이 구조되던 날 샌호세 광산에는 전세계 2000여명의 취재진이 찾아와 그들의 극적인 생환을 보도했다. 광부들의 구조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매몰지 입구 사막에 간이 천막을 세우고 밤을 세웠던 캠프의 이름이 '에스페란사(Esperansa)'였다고 한다. 스패니시로 '희망'을 뜻한다. 구출 광부중 한 명인 에리얼 티모나도 딸의 이름을 에스페란사로 지었다.

영원히 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지상의 대지에 광부들이 다시 섰을 때 그들은 '치.치.치.렐.렐.렐'을 합창하며 조국 칠레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들 광부들이 실의에 빠진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무언으로 외친 것은 바로 '에스페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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