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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후회

김외출/'수필과 비평' 등단

새벽녘 갑자기 어머니 침실에서 웬 비명이 들렸다.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방안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이부자리가 흠뻑 젖어있었다. 변기를 또 엎지른 것이다. 백수를 바라는 엄마는 지난 여름부터 치매에 걸려 혼돈과 망각의 늪에 빠져 계신다.

엄마를 모시고 있는 올케가 모처럼 동창들과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자 내가 며칠 동안 돌봐드리던 참이었다. 아기처럼 기저귀를 채웠는데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기억을 못 하고 변기에 앉다가 몸이 마음 같지 않아서 낭패를 보신 것 같다. 젖은 옷을 벗기고 보니 배가 등가죽에 붙어 있었다.

최근에는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하고 물과 미음으로 겨우 연명하신다. 이젠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자리보전 하고 누워서 처절한 삶 속에서 한 많은 세상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신다.

평소 어머니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고향에서 평생 홀로 세월을 보내셨다. 날로 사위어가는 몸으로도 노년의 외로움 내색하지 않고 잘도 견디셨는데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일 년 전에 오빠네로 상경하셨다. 서울에 오시자 치매증세가 보이더니 시간이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어 식구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을 보고 너 누구냐 하신다.



당신이 본 대변을 무슨 보물인양 신문에 싸 행주로 돌돌 말아서 싱크대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그것을 화장품처럼 얼굴과 손에 바르고 맛도 보고 이부자리 등에 칠을 해서 올케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식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는 말로만 듣던 치매가 그토록 삶을 망가트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총기 좋고 깔끔하기로 소문난 당신이 그런 꼴이 되다니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노인의 건강인가 싶다.

가족회의에서 어머니를 노인요양시설에 모시기로 의논했는데 효성이 지극한 큰 올케가 백수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시겠느냐면서 집에 모셨다. 언니도 일흔이 넘는 나이라 본인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처지이거늘. 그런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얼굴에는 지치거나 어두운 그늘이 보이지 않아 안쓰럽고 미안한 중에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께 정성을 다하는 언니가 마치 천사처럼 보이며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삼십대 초반에 청상이 된 어머니는 삼남매를 위해 당신의 청춘을 불살랐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며 오직 우리를 반듯하게 키우려고 애면글면 애쓰셨다. 생계수단으로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면서도 오징어 철에는 말려서 도시로 보냈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강한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삼 남매를 전부 서울로 유학시켰다. 등록금 고지서가 한꺼번에 나오면 그 돈을 마련할 때까지 끼니도 거르고 밤잠을 설치시던 어머니! 매사에 당당하고 지혜로운 분이었는데 모진세월에 밀려 삶의 끝자락에 선 당신….

언니가 여행에서 돌아 온 10여 일 후에 어머니는 이승을 떠나셨다. 유언대로 어느 절에서 49제를 올렸다. 상단 위에 향과 촛불이 제 몸 사르는 것을 보며 마치 우리를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이제는 삶의 영욕 모두 내려놓고 자식 걱정 없는 천상에서 평생 가슴 속에만 품고 살아온 아버지를 만나 극락왕생하시기를 빌었다. 평생 자식사랑에 혼신을 쏟던 어머니! 영원히 우리 곁을 지켜 주실 줄로 착각했는데 한 줌의 재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당신에 대한 내 눈길은 너무 무심했다. 거의 매일 딸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사연이며 건강 상태를 녹음테이프 틀어 놓은 듯 반복하실 때는 속으로 짜증이 났고 컴퓨터에 앉아 어쭙잖은 글 쓰고 있을 땐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빨리 끊기까지 했다. 그 전화가 외로움 해소의 비결인 것을 미련한 이 딸은 당신이 떠난 뒤에야 알았다. 이제는 당신의 그 목소리가 그리움이 되어 귓전을 맴돌며 환청이 되어버렸다.

나는 살기 어렵고 바쁘다는 핑계로 용돈 한번 넉넉히 못 드리고 외국여행 한번 시켜 드리지 못했다. 외국관광을 하려고 보니 그땐 이미 어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하고 계셨다. 세월은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할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왜 진작 몰랐는지. 그래도 언니가 집을 비운 덕분에 며칠간만이라도 어머니를 도와드릴 기회를 가졌다.

세월이 흘러 돌아가신지 벌써 두 번째 기일이 지났다. 어느 날 신발장을 정리하다 한쪽 구석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는 낯선 구두 한 켤레를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옛날에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두고 가신 신발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어머니를 본 듯 반가워 가슴이 뛰었다. 한평생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그리움에 목말라 하시던 엄마 언제 오셔서 이 구두를 다시 신을 수 있을까.

그날따라 창밖에는 봄비가 조용히 내렸다. 빗줄기 따라 내 가슴의 회한도 눈물이 되어 두 뺨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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