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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헬스클럽에 등장한 지문 인식기

이종호/논설위원

신체적 특징이나 행동 특성으로 개인을 식별하는 것을 생체인식기술(바이오메트릭스: biometrics)이라 한다. 이는 사람 몸에 있는 고유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이므로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정보가 유출될 위험도 적어서 미래의 신분증으로 각광받는다. 손가락 지문도 그 중의 하나다.

미국에 살면서 처음으로 지문이 신분증인 시대임을 실감하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연초 작심하고 시작한 운동을 하느라 매주 서너 번은 '24아워 피트니스'를 찾는다. 그런데 지난 달부터 그곳에 갈 때마다 ID카드를 내 보이는 대신 손가락 지문을 찍는다. 물론 잉크를 묻혀 찍는 것은 아니다. 전자 지문인식기에 검지 끝을 살짝 갖다 대는 것으로 신원 체크는 끝난다. 하지만 이를 위해 미리 양손의 지문을 등록해야 했다.

미국에서의 지문 날인이 이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주권을 받으려면 누구든 지문을 찍어야 한다. 또 테러범 색출이라는 명분으로 2004년부터 모든 외국인 입국자들도 지문을 찍는다. 이를 두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는 이유로 각국의 반발이 거세지만 미국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재미있는 것은 브라질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지문 채취에 맞서 브라질에 입국하는 미국인들에게도 똑같이 지문 날인을 요구하고 얼굴사진을 찍도록 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대접에 불편함과 모욕감을 느낀 미국인들이 강력히 항의했지만 브라질 정부 역시 꿈쩍도 않는다. '너희가 먼저 그러는데 우리라고 못할소냐'는 식이니 미국으로서도 할 말은 없게 됐다.



이처럼 지문이 신분 확인의 수단이 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일평생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이다. 특정 두 사람의 손가락 지문이 일치할 확률은 억지로 계산해도 640억분의 1정도라고 하니 지문만큼 확실한 신분증(ID)은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지문 날인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동기의 불순함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애당초 지문 채취라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됐다. 지금도 대부분의 국가가 범죄자 색출 등에 지문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 역시 마뜩하지 않은 부분이다.

한국은 이런 방면에서도 앞서 있다. 1968년부터 만17세가 되면 전 국민이 예외없이 동사무소에 가서 열 손가락 지문을 찍는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주민등록증이란 것을 받기 위해서다.

아파트 잠금장치나 현금자동 입출금기 증명서 자동 발급기 등 생활 속에서도 지문 인식기술은 꽤 많이 이용되고 있다.

요즘은 한걸음 더 나갔다. 심한 노동을 하면 지워지기도 하고 땀이나 이물질이 묻으면 제대로 인식이 안 되는 단점이 있는 지문 대신 홍채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 역시 한국에선 실생활에 빠르게 접목되고 있다.

일찍이 많은 미래학자들이 생체 인식기술의 발달로 모든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조종되는 세상을 경고해 왔다. 일부 기독교인들도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근거해 인체 바코드 시대의 도래를 최후 심판의 징조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여부야 어쨌든 지문이나 홍채 같은 생체 인식기술의 발달이 좋게만 활용되면 생활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왠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가 끊임없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불쾌감 때문일 수 있겠다.아니 아무리 특별한 기술로 나를 증명해 보여도 점점 더 믿지 못하는 불신의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는 씁쓸함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희한한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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