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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영혼의 불량식품' 폭력 비디오 게임

안유회/문화부 에디터

폭력적인 영상을 본 사람은 폭력적으로 변할까? 영상이라는 매체가 등장한 이후 계속됐던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번의 발화점은 ‘비디오 게임’이다.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 논쟁이 법제화로 번진 것은 2005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주 의회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의 미성년자 판매·대여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면서다. 게임업계는 이에 반발해 위헌 소송을 냈고 지난 2일 대법원에서 가주 법안에 대한 첫 위헌 심의가 열렸다.

비디오 게임은 아이들에게는 맛있고 부모들에겐 걱정거리인 ‘영혼의 불량식품’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다. 한 때는 만화가, 그 후로는 영화가 차지했던 자리를 이제는 비디오 게임이 차지한 것이다. 만화나 영화에 빠졌던 부모들도 게임은 싸워 이기기 어려운 벅찬 상대다. 게임회사들은 억울하겠지만 게임은 아마 부모들을 가장 괴롭히는 오락일 것이다.

몇 해 전 한국에서 한 10대가 3일 동안 라면만 먹으며 인터넷 게임을 하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정도면 죽음에 이르는 몰입도다. 자녀가 새벽에 몰래 일어나 게임을 하는 등의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은 주변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때로는 부모가 게임에 빠져들기도 한다.
비디오 게임은 이전의 어떤 엔터테인먼트보다 강력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내가 직접 하기 때문이다. 책, 음악, 영화에서 수용자는 수동적이다. 물론 이를 향유하고 해석하는 것은 수용자의 감성과 이성이지만 그렇다고 작품에 직접 개입하진 못한다. 비디오 게임은 다르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살인 장면을 가정하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등장인물을 죽이지만 게임에서는 내가 등장인물을 죽인다. 영화 관객들은 간접 체험 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러니 내가 직접 하는 게임의 감도는 전기에 쏘인 것처럼 강렬할 것이다. 부모들 입장에서는 전에 없던 막강한 상대를 만난 셈이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물론 게임 전체가 아니라 과도하게 폭력적인 게임이다. 삽으로 소녀의 얼굴을 내리치고 시체를 불태우고 차를 훔치고 성폭행을 하는 게임을 그대로 둘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게임을 미성년자에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은 영화로 치면 포르노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만약 이 법안이 합헌 판결을 받으면 이런 게임은 유통과 판매, 광고 등에서 일반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과 같은 타격을 받게 된다.

현재 관측으로는 이 법안이 합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합헌 판결 여부와 상관없이 이 법안은 미국사회의 폭력 묘사 수용력의 한계를 가늠하고 있다. 11개 주가 법안에 찬성하고 9개 주가 반대하며 논쟁에 뛰어든 것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이슈인지를 반증한다.

일반적으로 미국사회는 섹스 묘사엔 엄격하고 폭력 묘사엔 관대한 편이다. 이런 경향은 TV 드라마를 몇 시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영화 등급 판정의 공정성, 형평성 논란이 벌이지곤 한다. 관대한 폭력묘사는 미국의 건국 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많은데 이제 그 관대함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이번 법안은 게임이 영화를 제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엔터테인먼트로 등극했음을 선포하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부모들에게도 그에 걸맞는 관심을 환기시킨다. 게임의 등급은 영화처럼 자율적인 제도여서 게임업계의 기준이지 부모의 기준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미국은 폭력 묘사에 관대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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