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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가정폭력과 집단 우울증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일요일 당직은 특히 바쁘다. 어른이나 청소년들이 토요일 밤에 심한 음주나 마약을 복용하고 오는 후유증으로 부부싸움, 자녀의 가출, 자살 기도 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늘도 타이레놀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기도한 15세 소녀의 정신감정을 했다. 병실에는 소녀와 엄마 그리고 19세의 언니가 같이 있었다. 부모는 어린 시절에 미국에 온 멕시코 이민 1세들이란다. 영어가 유창하고 고정 직업을 갖고 있는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일할 때보다 놀 때가 많았다. 소녀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셨어요. 그리고는 엄마를 때렸어요. 언니와 저는 매맞는 엄마를 보면서 구석에 앉아서 울기만 했어요. 한 번은 신고를 해서 두 명의 경찰이 왔는데 그냥 가버렸어요. 또 전화하면 죽인다고 아버지가 겁 주는 바람에 그 다음에는 엄마가 맞는 것을 보고만 있었어요"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집에서 도망을 갔었어요. 그랬더니 엄마를 더욱 심하게 때린다며 언니가 연락을 해서 할 수 없이 돌아왔어요."



집으로 돌아온 날 밤 소녀는 자살을 기도했다. 엄마가 아버지의 폭행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엄습했고 술에 취한 채 짐승처럼 공격을 그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극도의 분노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녀의 우울 증세는 이미 2~3년이 진행된 상태였다. 학교 성적은 떨어졌고 운동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음식만 먹어대었다. 그리고 보니 환자와 마찬가지로 엄마나 언니도 모두 비만 상태였다.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 모녀는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맞는 것을 볼 때마다 제가 너무나 미웠어요. 엄마를 구출할 아무 힘이 없다는 사실이…" 열아홉살된 언니의 하소연이다.

"남자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버지의 짐승같은 모습이 자꾸 생각나요. 잘난 체하는 교수들 조차 보기 싫고요."

이 언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인한 불안증상이 심한 듯했다.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위협적인 사건들(폭행)이 자주 꿈에 나타나고 낮에도 고통스러운 영상으로 깜짝 깜짝 놀라게 되며 그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 남성을 멀리하고 있으니까.

"저는 늘 자신이 철로 위에 누워있는 상상을 했어요. 기차가 달려오면 그대로 죽을 수 있도록."

조용히 있다가 불쑥 내던진 엄마의 말이다. 엄마는 심한 열등감에 시달려 왔단다. 오랜 동안 학대를 받아 온 여성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 동안 큰 딸의 정신과 의사로부터 부부상담을 권유받았지만 남편은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거부하였단다.

"한 사람만 바뀌어도 부부관계에는 변화가 옵니다. 어머니 혼자만이라도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찾으신다면 두 따님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되겠네요."

한 명의 환자를 보려다가 나는 3명 가족의 집단우울증을 대면한 셈이다. 알콜중독과 우울증 사이에는 유전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니 이 가족 전체가 마음의 병, 나아가서 두뇌의 병 환자들인 셈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경찰관들도 새로운 교육을 받아서 가정폭력은 반드시 입건합니다. 많은 경우 판사들은 폭행자에게 상담치료를 법적으로 명령합니다. 강제로라도 가정상담소에 가서 매주 교육과 상담을 받다보면 가해자들에게도 변화가 옵니다. 이제부터는 어머니는 물론 따님이나 이웃들에게도 폭력이 시작되면 반드시 911로 연락을 하세요. 그것이 남편이 치료를 받게되는 첫 계기가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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