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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 뉴스] 부통령,대통령 그늘 아래 막강한 한직

부통령을 미국인들은 흔히 ‘비프’(Veep)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바이스 프레지던트(Vice President)의 첫 글자를 발음나는대로 만든 것이다.

각 당의 전당대회가 코앞에 닥아왔는데도 이 ‘비프’를 하겠다는 인물이 없다. 민주·공화 양당은 전 합참의장인 콜린 파월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본인은 전혀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제 2인자 자리를 우습게 보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통령직이 차기 대권 도전에 걸림돌이 되어서 일까.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두 맞는 말이다.

심지어 뉴욕의 항만청장이 부통령보다 더 높은 자리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는가 하면 존 F. 케네디는 상원의원시절 러닝 메이트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적도 있었다.



이번 대선은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어 누가 부통령후보로 나서는가에 따라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부통령직은 왜 생겨났을까. 헌법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의 생각과 부통령직의 변천사를 정리해 본다.



처음엔 부통령이 러닝 메이트로 나온게 아니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최다 득표자가 대통령이 되고 차점자가 부통령이 됐다. 차점자가 두명 이상일 경우는 의회에서 뽑았다.

부통령의 권한은 헌법에 특별히 명시된 게 없다. 대통령 유고시 이 자리를 승계한다는 것과 상원의장을 겸한다는 게 고작이다.

부통령을 따로 뽑게 된 건 1804년부터다. 최다득표자를 대통령으로 하고 나니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1800년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 토머스 제퍼슨과 부통령 후보인 에이런 버의 득표가 똑같았다. 결국 하원에서 표결을 해 제퍼슨이 대권을 잡았지만 이 투표가 몇개월이나 걸렸다. 권력의 공백을 우려한 나머지 헌법을 고치게 된 것이다.

부통령에 관한 헌법 개정은 1965년 나왔다. 케네디가 암살되자 서둘러 만든 것이다.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의 승계를 못박은 다음 부통령이 공석이 되면 대통령이 임명,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인준토록 했다.

지금까지 백악관 진출에 성공한 부통령은 모두 14명. 이중 8명은 ‘우연히 대통령이 된 인물들’(accidental presidents)이다. 재임중 대통령이 사망해 대권을 잡은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사임으로 행운을 차지한 인물도 있다. 제럴드 포드다. 자력으로 선거에 나서 대권고지를 점령한 부통령은 5명에 불과하다.

겉만 화려했지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빛을 못본게 미국의 부통령이다. 그래서 때로는 ‘워싱턴의 조크’라는 우스개로 불리기도 한다.

처음엔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료회의에도 끼이지 못했다. 백악관과 의사당 주변만 맴돌다 임기가 끝나면 이름없이 사라진 것이다.

부통령에 힘을 실어준 건 프랭클린 루즈벨트(FDR)가 처음이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FDR은 부통령을 꼭 백악관 회의에 참석토록 했다.

193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부통령은 따로 상원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등 찬밥신세였다. FDR이 집권하자 대통령과 함께 취임식을 갖도록 한 것이다.

아이젠하워와 케네디도 마찬가지였다. 닉슨이 나중에 대통령이 된 것도, 또 린든 B. 존슨이 이름을 날리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전임자의 각별한 배려가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케네디가 암살당해 존슨이 대통령자리를 물려받자 미국인들은 모두 안심했다. 케네디로 부터 대권 수업을 착실히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미·소 냉전시절이어서 부통령의 국정수행능력이 형편없었다면 미국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래서 그에게는 ‘가장 잘 준비된 부통령’이란 수식어가 붙게 됐다.



*부통령의 권한

헌법에 나와있는 부통령의 보직은 상원의장 하나다. 그것도 사회만 볼 수 있을 뿐 토론은 물론 표결에도 참여할 수 없다. 찬반 투표에서 표가 똑같이 나왔을 경우에만 이른바 ‘캐스팅 보트’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부통령은 상원의장 자격으로 의원들에게 발언권을 줄 권한이 있다. 이를 ‘끗발’로 사용한 부통령도 있었다. 자기가 싫어하는 의원들에게는 아예 발언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워낙 파워가 없다보니 의사진행권을 무기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 것이다.

보직다운 보직이 주어진 건 1949년 의회가 국가안보위원회(NSC)를 발족시키고 나서 부터다. 부통령에게 부위원장 자리를 준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수시로 닉슨에게 사회봉을 건네주고 NSC를 이끌도록 했다. 나중에 닉슨이 외교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게 된 건 아이젠하워 덕분이었다.

이를 계기로 부통령은 각료회의에도 정기적으로 참석,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 부재시는 국무장관이 아닌 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는 관례가 만들어 진 것이다.

케네디는 미국의 방위산업과 우주정책을 부통령이 총괄하도록 해 그의 입지를 강화시켜 줬다. 클린턴이 앨 고어에게 ‘정보 수퍼하이웨이’ 건설의 책임을 맡긴 것과 다를게 없다.

부통령 관저가 생겨난 건 1974년이 되어서다. 워싱턴의 해군기지내에 맨션을 관저로 잡아준 것이다. 이외도 백악관에 오피스가 있고 상원에도 의장실이 주어진다.



*러닝 메이트

부통령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건 케네디가 처음이다.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의 표를 흡수하기 위해 린든 존슨을 부통령으로 내세웠다. 이 전략이 들어맞아 케네디는 닉슨을 누르고 백악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부터 대권후보자가 동부출신이면 남부나 서부출신의 명망있는 정치인들중에서 러닝 메이트를 고르는 전통이 생겨났다.

여성이 부통령후보가 된 적도 있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과 맞섰던 월터 먼데일이 뉴욕출신의 하원의원 제럴딘 페라로를 내세워 여성표와 가톨릭 표를 함께 모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

미 헌정사에 제럴드 포드처럼 운좋게 대통령이 된 사람은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원래 닉슨 시절의 부통령은 스피로 애그뉴였다. 닉슨 교주의 참모장으로 불렸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뇌물사건에 휘말려 연방대배심에 회부되자 사임을 하게 된 것.

헌법규정에 따라 닉슨은 부통령을 지명했다. 그가 바로 포드다. 당시 하원의 공화당 원내총무였다. 1974년 닉슨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하자 포드가 대통령이 된 것.

이어 부통령직 마저 공석이 되자 포드는 전 뉴욕지사였던 기업인 넬슨 로크펠러를 지명한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은 선거를 치르지 않은 정·부통령을 갖게 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닉슨의 사임으로 4년 한 임기동안 대통령 두명과 부통령 세명을 갖게 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닉슨의 잔여임기를 마친 포드는 민선 대통령의 야망을 가졌으나 닉슨을 사면했다는 국민들의 비난으로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억세게 불운한 사나이는 애그뉴. 닉슨으로 부터 대권수업을 받았지만 사소한 스캔들에 휘말려 정계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항명파동

21대 대통령인 체스터 아더는 원래 뉴욕 항만청장이었다. 보스정치가 판을 쳤던 시절이다. 당시 뉴욕의 정치판 보스는 로스코 캉클린이라는 상원의원이었다. 그의 환심을 사려 공화당은 캉클린의 측근인 아더를 부통령후보로 지명했다.

캉클린은 항만청장 자리가 부통령보다 훨씬 높은 지위라며 이 제의를 거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아더는 보스의 명령을 어기고 부통령이 됐다.

행운의 여신은 그가 취임한지 6개월후 아더에게 미소를 보냈다. 제임스 가필드가 암살돼 대통령직을 승계한 때문이다. 항명파동의 주역이 대권을 거머지게 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부통령이 된 걸 두고두고 후회한 인물도 적지 않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시절의 존 가너가 대표적인 케이스.

하원의장이란 막강한 자리를 포기하고 FDR의 러닝 메이트로 출마, 당선됐으나 대통령의 푸대접으로 할 일이 없었다. ‘부통령직은 오줌 통만도 못한 자리’라는 욕설을 남기고 은퇴해 버렸다.

해리 트루만 시절 부통령인 앨번 바클리도 비슷한 경우. 4년후 자리를 박차고 나와 상원의원에 도전, 재기에 성공했다. ‘할 일 없이 부통령 자리에 앉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의회에서 문지기 노릇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을 남겼다.


박용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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