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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미국행 입양아 넘쳐나…라면박스에 담아 실어 날랐다"

'겨울만 되면 그들 생각'
양수석 전 대한항공 기장

"1년에도 수십번씩 핏덩어리들을 실어 날랐어요. '아저씨 서울로 돌아가요'라며 날카롭게 울부짖던 아이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모두 건강하게 잘 컸는지…."

겨울만 되면 미국으로 떠나 보낸 입양아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양수석 전 대한항공 기장(75.사진)은 아직도 자책감이 든다고 했다.

1960년 KNA(Korean National Airline.대한항공 전신)의 조종사로 첫 발을 내딛은 양 기장은 수천명의 전쟁고아.혼혈아.장애아들을 실어 보냈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서다.

김포에서 홍콩은 8시간 미국은 40시간이 걸렸다. 114개 좌석으로 이뤄진 비행기는 입양가는 아이들로 매일 만석이었다. 라면박스 하나를 6칸으로 나눠 고개를 가누지도 못하는 신생아들을 넣었다. 6~7살의 아이들은 비행기 타는 기쁨에 취해 어디에 가는 지도 몰랐다.



"그때마다 해리 홀트(홀트아동복지회 설립자)씨는 비행기 밑에서 울며 기도했어요. 저를 비롯한 승무원들도 '가난한 조국을 원망해라'하며 많이 울었죠. 지금도 친부모 찾겠다고 한국에 오는 입양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비행을 물으니 그 역시 입양아들과의 추억이다.

1961년 11월 어느 비오는 밤에 그의 비행기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멈출 위기에 닥쳤다. 엔진 4개중 하나가 꺼진 것이다

"약 200여 명의 입양예정아들이 비행기에 타고 있었죠. 이미 한참전 노리턴포인트(No-return point.귀환 불능 지점)을 지난 후라 '이대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번 버림받고 또 다시 죽을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미친듯이 '메이데이(mayday.조난 무선 신호)를 외쳤어요. 어떻게든 살리고 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천둥소리 엔진소음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비행기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엄마'를 외치는 소리만 가득했다. 연료가 언제까지 버텨줄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엔진 3개로 연료공급소가 있는 알래스카주 시미야(Shemya)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이들의 울부짖음은 거세졌다. 요동치는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정말로 엄마가 필요한 급박한 상황이었다.

결국 양 기장은 규칙을 어기고 비행기를 돌려 일본 미사와에 있는 미군기지에 착륙했다. 이틀밤을 묵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기지에 거주하는 미군부녀회가 총동원됐다. 아이들은 비로소 엄마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어엿한 중년이 되어있을 것이라며 웃는 양 기장은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어디있든지 건강하게 살아줘. 아저씨가 항상 기도하고 있다. 파이팅!"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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