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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카이사르는 멋졌다

이종호/논설위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15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작이다. 그중 45권은 전부가 시저라 불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100~B.C.44)에 관한 것이다. 로마 역사에서 그만큼 걸출하고도 중요한 인물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는 로마제국의 기틀을 완성한 정치가이자 탁월한 장군이었다. 웅변가였고 법률가였으며 건축가 수학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이런 천재성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 끝에 나이 40이 넘어 뒤늦게 발휘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카이사르는 몰라도 그의 말들은 기억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원로원의 소환장을 받아들고 고뇌의 결단 끝에 갈리아 총독 카이사르는 이렇게 외쳤다. 그리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 숙적 폼페이우스와 그 일파를 제거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는 여세를 몰아 소아시아 지역을 평정한 카이사르가 원로원에 보낸 환희의 승전보였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선 카이사르도 끝내 원로원 의원 14명의 칼에 최후를 맞는다. '브루투스 너 마저도!' 는 그 순간 아들처럼 여겼던 심복에게 던진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은 비참했지만 제국을 이루려는 그의 꿈은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최초의 로마 황제가 됨으로써 완성이 되었다. 또 비록 자신이 황제가 되진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독일에서 '카이저'로 러시아에서 '차르'로 황제를 뜻하는 보통 명사가 되어 후세에 전해졌다.

카이사르는 지성과 끈기 설득력과 자제력 등을 고루 갖춘 불세출의 리더였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남다른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역사상 드물게 '글을 쓰는' 리더였다는데 있다.

그는 8년에 걸친 갈리아 정복 과정을 '갈리아 전쟁기'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 책은 2000여 년전 유럽을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지금도 라틴어 공부의 고전으로 활용될 만큼 뛰어난 문장을 자랑한다. 역사가들은 그의 글이 고상하면서도 질박하고 명료하면서도 힘이 넘친다고 평한다. 그의 성품이 꼭 그랬다.

20세기 최고의 정치가로 일컬어지는 처칠은 '2차대전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만약 카이사르가 요즘 살았더라면 그의 전쟁기야말로 노벨상감이 아니었을까.

글을 잘 쓴다고 모두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 잘 쓰는 리더가 좀 더 효율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리더의 또 다른 자질이라 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데도 글쓰기만큼 유용한 훈련은 없다.

세계적 리더의 산실인 하버드대학의 리처드 라이트 교수도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하버드 학생들이 4년 동안 가장 신경 쓰는 분야는 글쓰기다.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학교생활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정말 그렇다. 언제가 어느 조사기관이 하버드 졸업생중 사회적 리더가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일 중요한 성공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다. 그 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학벌이나 인맥이 아니라 놀랍게도 '글쓰기 능력'이었다.

아직도 글을 쓰는 것이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절대 그렇지 않다. 카이사르가 그랬듯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게 글쓰기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꾸준히 써 보는 것만이 해답이다. 새해에는 우리 주변에도 글 쓰는 리더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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