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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아침에 해가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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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발행 2010/12/29 미주판 18면 입력 2010/12/28 14:57

‘어제 나는 울었다. 내가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어제는 정말 엉망이었어. 그래서 아마도 하느님이 매일 새 날들을 만드나 보다. 오늘도 배는 고프지만…’

흑인 십대 소녀 클래리스는 미혼모의 가정에서 학대 받으며 자라났고, 근친에게 강간당하여 애를 낳고, 또다시 임신을 했고, 에이즈에 감염된 채로 살고 있다. 뚱뚱하고 못생겨서 주위 또래들의 조롱을 받고, 사방을 둘러봐도 친구가 없다. 그날 아침에도 클래리스는 끼니도 굶은 채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나날들을 반추하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하느님은 인생이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을 선물하는 것 같다고.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을 뒤흔든 영화 ‘Precious’에서 주인공 프레시어스 클래리스가 주린 배를 안고 내뱉는 독백이다.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나면 이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침은 밝아온다. 그러면 우리는 어둠을 잊고 다시 기운을 내어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태양의 아이들이니까.

시간이란 개념을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흐르는 시간의 단위를 계산해내고, 하루, 한달, 일년이란 이름을 붙이기까지는 긴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인간은 하루하루 흘러가는 날들과 지구의 자전, 공전 주기를 엮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일년으로 나이를 셈하게 되었다. 지구는 공전을 반복하지만, 우리의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eitos)의 말처럼, 시간을 되풀이 하여 살 수는 없다. 해는 매일 떠오르지만 우리의 매일은 새롭다. 반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흑인 소녀 클래리스는 생각한다, 매일 새로 열리는 아침은 절대자가 만들어낸 선물이 아닐까 하고.

2010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나의 한 해를 돌아보니, 기쁜 일도, 힘겨운 일도 많았다. 한 해를 전쟁 치르듯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공들인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불운도 겪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온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우리 남매들이 모두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시절, 아버지는 어느 겨울밤에 우리들을 모아놓고 종이를 한 장씩 주셨다. “이 종이에 일년간 잘했던 일, 잘 못 한 일을 적고, 그리고 내년의 희망을 적어보아라.” 우리들은 무릎을 조아리고 앉아서 열심히 그 흰 종이에 여러 가지를 적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일등을 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던가, 매일 일찍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어머니 심부름도 열심히 하겠다던가, 그런 어린 아이들의 ‘착한’ 꿈들. 아버지는 나중에 그 글쓰기의 의미를 설명 했다. 꿈이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가다 보면 설령 계획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해도 아무런 계획 없이 사는 것보다는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몇 해 동안 아버지는 연말이면 그것을 적어서 내라고 했고, 우리들의 신년계획은 아버지의 책상 서랍 속에 자물쇠로 채워진 채 보관되었다. 그 행사도 우리들이 각자 머리가 커지면서 사라졌고, 우리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갔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밀봉된 아버지의 서랍 속의 서류 뭉치에서 우리들은 어릴 적 우리가 적어 냈던 새해 계획들의 흔적을 읽어 볼 수 있었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던, 철부지 아이들의 신년 계획을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의 서랍 속에 보관하고 계셨다는 것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었다.

이제 며칠 후면 2011년이 밝는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이지만, 우리는 어느 하루를 1월 1일로 정하고 새로운 포부와 희망을 갖고 새로운 날들을 향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가 된다. 그 새로운 한 해가 특별히 빛나고, 기쁨으로 가득 차길 소망해 본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매일 새로운 태양과 매년 새로운 첫날을 선물해 주셨으니, 우리는 기쁘게 그 나날들을 살아야 할 사명이 있다. 오늘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신년 설계를 해 봐야겠다.

이 은 미 미드웨스트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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