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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새로운 뉘앙스' 영사관 미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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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발행 2011/01/19 미주판 18면 입력 2011/01/18 15:17

워싱턴DC 한국 영사관에서 열리고 있는‘워싱턴 한미 미술가 협회’ 회원들의 전시회를 관람했다. 작가들은 재미 한국계 미술가들로 한국과 미국의 미술대에서 실력을 닦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다.‘ Nouvelles Nuances’라는 기획전의 제목이 시사하듯 여러 가지 소재로 새로운 의미나 뉘앙스를 전달하려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워싱턴의 한국 영사관에서 미술 전시회를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였다. 그 동안 재미 한국계 미술가들의 전시회가 활발하게 진행 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내가 미술전을 보기 위해서 영사관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워싱턴 지역에서 살아온 지난 4년간, 시간 날 때마다 워싱턴과 동부의 미술 전시장을 찾는 삶을 살아왔다. 워싱턴의 전시장은 수시로 전시 상황을 확인하고 아무 때나 뛰어가서 보곤 했다. 영사관 이웃에 필립스 컬렉션 (Phillips Collection)이라는 미술관도 있던 터라서 이곳을 지나친 적도 많았지만 영사관의 문지방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면 나는 왜 번번이 영사관 문 앞을 지키는 서재필 선생께 인사만 꾸벅 하고 그 앞을 지나쳤을까? 영사관은‘관공서’이고, 나는‘관공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경기도 용인의 농가에서 나고 자랐으며 나의 삶의 뿌리는 농경사회에 내려져있는데, 우리들은 파출소나 경찰서, 면사무소나 기타 관공서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고 자라났다. 어른들은 애가 울면 '순경이 잡아간다'고 협박했고, 순경은 국가기관의 상징이었으며, 따라서 국가기관과 관련된 곳은 모두 무서운 곳이었다.

상경하여 학교에 다닐 때, 우리 식구들은 무허가 단칸방에서 지냈는데, 그 시절, 가난한 우리 엄마가 ‘동사무소’에 가는 날 엄마는 아주 골치가 아픈 표정이었다. 엄마가 동사무소에 무슨 서류를 떼러 간다고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나 지친 표정으로 돌아왔는데, 나중에 엄마는 약아져서 동사무소 직원에게 담배를 두 갑 정도 사다 주면 서류를 조금 빨리 해 준다는 이치를 배웠다. 이는 모든 민원서류를 손으로 직접 써서 주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화이다. 엄마에게도 관공서가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성인이 돼 동사무소에서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치느라 이곳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도 있었건만,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요즘 대민 공무원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신속한지 체험으로 알고 있건만, 그래도 여전히 내게 '관공서'는 무서운 곳이고, 될 수 있는 대로 안 가는 것이 상책인 곳이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인상은 얼마나 질긴가!

이번에 용기를 내어 영사관 문을 열어젖히니, 1층 대민 업무를 하는 공간의 벽에 미술품들이 배치가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조심조심 눈치를 보면서 작품들을 관람했다. 사진기를 꺼내면서도 다시 한번 주위의 눈치를 살폈는데, 혹시나 누군가가 “이봐요, 지금 거기서 뭣 하는 거요?”하고 호통을 칠까 봐 조마조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락의자까지 마련된 그 영사관 1층 민원실에서 구경을 실컷 하고, 소파에 편히 앉아 쉬다가, 사진기를 꺼내어 작품 사진을 찍는 동안, 이런 나를 신경 써서 쳐다보거나 혹은 내 신분을 확인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민원실이면서 전시장이기도 한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복사기 한대를 발견했는데, 그 위에 ‘복사무료’라는 표시가 보였다. 민원인이 급히 복사해야 할 서류가 있을 때, 이곳에서 해결하라는 취지 같았다. 이런 친절한 배려까지 해 주다니! 나는 왜 이 좋은 곳을 그 동안 겁을 내고 안 들어오고 지나치기만 했을까? 길가다가 다리 쉼 하러 들어온대도 아무도 제지를 안 할 터인데.

워싱턴 한미 미술가 협회의 Nouvelles Nuances(새로운 뉘앙스) 전시회에 갔던 나는, 한국의 관공서에 대한 ‘새로운 뉘앙스’를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초대작가인 최아영 화백의 ‘Spring is Coming(봄이 오시네)’처럼 관공서에 대한 내 인상도 얼음이 풀리고 봄이 오는 것 같다. 이 전시회는 2월 23일까지 계속된다.

이 은 미 미드웨스트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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