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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튀니지 '재스민 혁명' 을 보는 눈

[LA중앙일보] 발행 2011/01/20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1/01/19 21:50

이종호/논설위원

북아프리카의 친서방 국가, 55년간 대통령은 딱 두명 뿐…민주화 이뤄질지 세계가 주목
인류 역사는 늘 개인의 자유 확대라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소수 한 두사람에게 독점되어 있던 권력을 다수 대중의 것으로 일거에 되돌리는 것 그것을 역사는 혁명이라 불렀다.

프랑스 시민혁명 영국의 명예혁명이 그랬고 미국의 독립전쟁도 그런 점에서 혁명이었다. 우리의 4.19 5.18 6.10 항쟁이 갖는 의미도 다르지 않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의거니 민주화 투쟁이니 하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따름이다.

지금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작은 나라 튀니지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화를 향한 또 하나의 역사혁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발단은 한 청년의 분신에서부터 시작됐다. 대학 졸업 후 일자리가 없어 무허가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그가 경찰 단속에 적발되자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41년 전 서울 청계천에서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분신 소식은 트위터.페이스북같은 소셜네트워크에 얹어져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이어졌다. 만성적인 실업과 고물가에 시달려온 국민들의 억눌린 심정이 폭발해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연결된 것이다.

결국 벤 알리 대통령은 사우디로 피신했고 23년간의 장기집권은 종언을 고했다. 세계 언론은 이를 튀니지의 나라꽃(國花) 이름을 따 '재스민 혁명'이라 불렀다.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그리고 다리는 아프리카에 걸쳐 있는 나라가 튀니지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오히려 더 인상 깊게 튀니지를 만난다. 기원전 2세기 로마와 대결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BC247~BC183)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땅이 바로 지금의 튀니지였기 때문이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9세기경 페니키아인이 튀니지만에 건설한 식민도시였다. 이후 해상 무역을 통해 번영을 이루고 지금의 스페인.시칠리아까지 진출 지중해 패권을 놓고 로마와 맞섰다. 100년 이상 지속된 양국의 치열했던 쟁패 과정을 역사는 3차에 걸친 포에니전쟁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화려했던 카르타고의 옛 영화는 스러지고 지금 튀니지 땅엔 퇴락한 몇 개의 돌기둥만이 옛 자취를 전할 따름이다. 그런 튀니지를 세계가 다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인구 98%가 무슬림인 튀니지가 이란.이라크 등 다른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와 달리 친서방국가라는데 있다. 1956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55년간 단 두명의 대통령만 존재했던 전형적인 독재국가였지만 미국의 대외정책에 변함없이 지지를 보내왔다는 것도 서방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나 튀니지의 민주화를 겉으론 지지하면서도 드러내놓고 현 사태를 지지할 수는 없다는데 미국 등 서방의 고민이 있다. 자칫하면 과거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에서처럼 친미 독재체제의 붕괴 이후 반서방 적대국가의 출현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게 된 것은 20세기가 남긴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독재의 전횡이 지속되고 있는 곳은 여전히 많다. 튀니지 혁명 역시 아직은 진행형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보려는 튀니지 국민을 응원하는 것은 동병상련의 경헝을 가진 우리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튀니지의 민주화 바람이 아직도 독재라는 고질병을 앓고있는 인접국가들에 희망의 바람으로 번져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도 지구촌시대 시민으로서 분명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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