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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 다큐멘터리-2] 1905년 이민 중단, 3년간 65차례·7026명 몰려오자 일본인들 반발

하와이 이민 붐 타고 사기단도 등장
1033명 속여 에네켄 농장 몰아넣어

◇이민 붐 신혼부부도 이민대열

1900년대 초 그 당시에 이민을 간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더구나 그 시대는 극히 폐쇄적이고 봉건적인 사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갓 시집온 새색시를 데리고 훌쩍 이민선에 오른 사람이 있다.

취재 당시 95살로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살고 있었던 김은순 할머니의 경우다.

"우리 시댁에서 간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깜짝 놀라지 않았겠어요. 대문 밖도 모르는 처를 데리고 네가 어디를 간단 말이냐? 못 간다.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시삼촌등 집안 어른들이 다 모여서 '조카놈 하나 없는 셈치고 없애버려야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들어오면 혼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도망가버렸지요 먼 데로. 그러니 기다려도 옵니까? 기다려도 오지 않고 날이 저무니까 모두 헤어 져 가셨죠."



"새벽 1시에 집에 들어 왔어요 남편이라는 사람이. 그리고는 그 이튿날 짐을 싸가지고 가자고 해요. 시어머니가 마루바닥을 치면서 울면서 '이 몹쓸 놈아 가면 너나 가지 네 처는 왜 데리고 가냐? 대문 밖도 모르는 젊은 처를 어디로 데려간단 말이냐?'고 했지만 어떻게 해요? 따라 나갔죠."

◇이민자 중엔 유식한 인사도 많아

당시에 이민을 간 사람들이 모두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었고 노동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상당히 유식한 사람들 양반계급의 학덕 있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 한인 중에 유식한 사람들도 많이 왔습니다. 변윤행씨라고 한국에서 신부님으로 계셨던 분인데 여기에서 교사로 여러해동안 수고 하였었습니다." 멕시코 시티에서 살고 있었던 취재 당시 81살 최병덕씨의 회고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민 결심을 했을까?'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술과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했던 사람들이라고도 하고 학덕은 있었지만 돈이 없었다. 또는 당시의 세상을 비관했던 사람들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신학문을 배우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척정신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었으리라고 믿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훗날 노동자 농민들로 구성된 우리 이민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2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사람들이고 국가의식을 고취했던 사람들이고 대표자로서 농장 주인들과 협상을 해가면서 한인들의 권익을 위해 일해왔던 사람들이었다.

◇1905년4월 하와이 이민 중단

1902년부터 시작된 아메리카 이민은 그 뒤 1905년까지 계속됐으며 이 기간 동안에 65차례에 걸쳐 무려 7천26명이 하와이 농장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1905년 4월 하와이 이민은 중단됐다.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 중단에 대해 양주은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사람들이 가만히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꾸 자꾸 들어오면서 그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거든. 그 사람들은 미국에 온지가 벌써 50-60년이 돼서 영어도 잘 알고 또 사탕수수 재배업자들도 잘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그만큼 크레딧도 있었지.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그때 막 왔으니 영어를 아나 신용도가 있나.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얘기해서 회사에서 한국 사람들의 이민을 중지했지 STOP시킨 거야. 그리고는 일본사람들을 들어오게 한 거지."

하와이에 있는 일본인들이 한국인 숫자가 늘어나는데 대한 반발을 일으켰다는 얘기는 흥미 있는 일이다. 을사보호조약 체결이후 한국에 설치한 통감부의 한국이민 관련문서에 보면 한국이민 세력이 점차 커져서 하와이에 있는 일본인 이민회가 일본정부에 금지를 희망했다는 구절이 바로 그 점을 증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멕시코 이민 사기단

1900년대 초 그 당시에도 이민 사기단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와이 이민 붐을 타고 무려 1033명을 한꺼번에 화물선에 태워 멕시코로 이민을 보낸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권통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말을 잘했어요. 그 사람이 한인을 모두 모집해 가지고 팔아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디로 나가버렸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우리는 3년만 일하면 한국으로 나갈 수 있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와이로 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를 이 유카탄으로 몰아 넣었어요."

1033명중의 한 분으로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어저귀) 농장에서 한평생을 일해오다 아들과 손자들을 따라 티후아나에서 말년을 보냈던 김은순 할머니의 설명이다.

'권통변'이란 성씨가 권씨이고 통변 즉 통역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삼장수 박영순이 북미 한인 공립협회에 보낸 멕시코 한인들의 실상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권병숙'씨로 돼있다.

멕시코 이민에 대한 논란은 많다. 사기단이 꾸민 불법 이민이었다. 혹은 사실은 합법적이었으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과장됐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기자가 초기 이민들을 만났을 때 어렵게 볼 수 있었던 '빙표'라는 것이 있었다. 빙표는 우리가 여권이라고 말하는 당시의 우리정부인 대한제국이 발행한 여행 허가증이다. 이 여권은 16절지의 백지에 반절은 한글과 한문으로 되어있고 반절은 다시 둘로 나뉘어 영어와 불어로 번역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하와이 이민의 경우 빙표에 행선지가 영어로 하와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그러나 멕시코 이민의 빙표에는 영어 표기의 행선지가 없다. 그리고 여권 번호도 멕시코 이민의 경우 기록이 돼있지 않다. 몇 개의 도장이나 압인도 없었다. 그렇다면 멕시코 이민은 불법적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노예처럼 여러 농장으로 흩어지고

어떻든 우리 이민 8천 1백여명은 아메리카에 발을 디뎠고 그날부터 낯설고 말설고 물설고 산설은 곳에서 각각 농장으로 흩어져 갔다.

"농장의 주인들이 하나 둘씩 와 가지고 돈을 많이 낸 농장주인들은 사람을 더 많이 데려가고 적게 낸 농장주인은 적게 데려가고… 그렇게 차례로 22농장주인들이 와서 한인들을 데려갔는데 나중에는 1명만 남아서 그 사람만을 데려간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많은 아메리카 이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이 기사는 1977년 당시 라철삼기자(동아방송·KBS)가 초기이민자들의 육성 증언을 바탕으로 방송한 내용을 지난해 책으로 펴낸 '아메리카의 한인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내용은 제5회 한국방송대상 국무총리상과 제2회 한국방송윤리위원회상을 수상한 바 있다. 본지는 이민선조들의 땀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이 내용을 20여회에 걸쳐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자 지면에 게재한다.

정리=천문권기자 cmk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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