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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91세 할머니가 보내 온 수표 두 장

김완신/논설실장

며칠전 편집국 오피니언 담당자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LA의 한 노인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보낸 긴 글의 편지였는데 봉투에는 50달러짜리 수표 2장이 동봉돼 있었다.

하나는 아프리카 차드에서 우물 파주기 봉사를 하고 있는 굿네이버스에 보내는 후원금이었고 다른 하나는 1달러씩을 풍선에 넣어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캠페인에 사용해 달라는 돈이었다.

할머니의 편지는 '아들의 무덤 위에'라는 글로 시작됐다. 올해 91세의 할머니는 최근 감당하기 어려운 슬픈 일을 겪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였다.

45세에 남편을 먼저 보낸 할머니에게 남겨진 것이라곤 아들 셋과 딸 셋이 전부였다고 한다. 홍제동 산꼭대기 판잣집에서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자녀들을 공부시키며 힘겨운 세월을 견뎌 왔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둘째 아들은 식구들을 위해 서독에 광부로 취업했고 그 덕분에 다른 아들 딸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목석같은 어머니에게 단 한마디의 칭찬을 들어 본 적이 없어도 극진한 마음으로 효도했던 아들. 그런 아들의 죽음이 할머니는 믿어지지 않았다. 2년전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바람처럼 찾아와 문앞에 용돈을 놓고 간 것이 아들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떠난 아들을 떠올리며 할머니는 눈물로 두 장의 수표를 썼다고 한다.

할머니는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한 자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아들은 생전에 방랑벽이 있었다고 한다. 여유가 생기면 세상의 이곳저곳을 새 처럼 떠돌았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위해 노모는 북으로 보내는 풍선에 50달러를 담았다. 풍선을 하늘로 보내면 자유롭게 날아 아들에게로 갈 것만 같았다. 비록 풍선이 아들에게 닿지 못해도 그 땅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원을 담았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우물 파주기 캠페인에도 아들의 이름으로 성금을 보냈다. 아들은 더 이상 이 땅의 사람이 아니지만 흙탕물을 마셔야 하는 아이들에게 한 모금의 맑은 물을 주겠다는 따뜻한 마음이다.

최근 중앙일보는 미주 한인커뮤니티를 대상으로 기부 포털사이트를 개설했다. '마이해피빌리지(myhappyvillage.org)'로 문을 연 사이트는 각계의 후원금으로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나눔의 행복을 실천하고 사랑 가득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다.

행복을 가져다 주는 '해피 빌리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기부와 봉사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이 해피빌리지의 거주 자격이 주어진다면 할머니는 '제 1호 주민'이 돼야 할 것 같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승화시켜 북녘 땅으로 아프리카로 보내는 모정은 편지 글 하나 하나에 애끓는 상처로 새겨져 있다. 먼 곳에서 죽음을 맞은 아들을 찾아 갈 수도 없는 어머니는 아들의 무덤가에 놓을 돈을 북한과 아프리카로 보낸다고 했다.

편지 마지막에서 노모는 아들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를 흐린 눈빛과 떨리는 손끝으로 이렇게 적어 놓았다.

"아들아 너의 이름으로 풍선을 보내고 우물을 만든다. 너는 이곳에 오지 못하지만 얼마 안가서 나는 그곳으로 갈 수가 있다. 거기서 자비하신 그분 앞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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