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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이집트 박물관 앞의 '인간 사슬'

김완신/논설실장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사상자가 이미 수천명을 넘어서면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카이로 도심에는 100만명의 시위 군중이 운집해 부패정권 심판에 동참했다.

시위가 격렬했던 지난 주말 밤. 시위대의 일부가 카이로 한복판에 소재한 이집트 박물관에 난입해 2구의 미라를 훼손하고 유물을 약탈해 갔다.

성난 폭도들에 의해 수천년 이집트 역사를 상징하는 박물관이 유린되자 군과 시민은 대립상황을 즉각 중단하고 유물 보존에 나섰다. 청년 시위대들은 박물관 입구에서 '인간 사슬'을 만들어 몸으로 지켰다.

1835년 세워진 이집트 박물관에는 나일강 유역에서 시작된 인류문명의 흔적이 담긴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투탕카멘 왕의 마스크를 비롯해 파라오 시대의 미라 27구 등 12만점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박물관 약탈 소식이 전해지자 한 주민은 "우리는 5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유물이 약탈당하는 것은 역사를 빼앗기는 것이고 잃어버린 역사는 다시 찾을 수 없다"며 박물관 사수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에 반기를 든 시위대지만 그들 역사의 상징이면서 자부심인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 군과 하나가 됐다.

몇 해 전 이집트를 방문했던 한 지인은 지금도 피라미드 앞에서 현지 대학생이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당신은 피라미드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아니라 위대한 인류 역사 앞에 서있는 견학자입니다."

서구 열강에게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던 아픈 역사를 가진 이집트는 최근들어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자국의 유물반환 요청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무형의 역사를 살아 숨쉬게 하는 유물을 찾는 것이 역사를 복원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폭력사태로 무정부 상태가 된 이집트에서 유물 지키기에 시민과 군이 나섰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사 필수과목 제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국사 과목은 1955년 세계화.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급 학교에서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지정되면서 위상이 추락했다. 이후 대학입시와 공무원 채용 시험 등에서 국사 과목이 사라졌고 이에 중앙일보와 뜻있는 단체와 학자들이 중심이 돼 '국사 살리기'를 추진하고 있다.

이념 갈등의 격동기를 거쳐 온 한국사는 우파와 좌파의 역사해석 논리로 얼룩져 있다. 우파는 국사에 치중하는 것이 글로벌 지적 경쟁력을 추락시킨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펼쳤고 좌파는 이데올로기의 붓으로 역사를 덧칠했다. 또한 여러 학자들은 자의적인 역사해석을 '사관'이라고 미화하면서 한국사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

민족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기반은 언어와 역사와 문화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뿌리없는 유랑민일 수밖에 없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집트와 비교할 때 한국은 이미 민주화를 이룬 민족이다. 40%가 넘는 극빈층과 장기집권의 전근대적인 통치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집트보다 선진화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본질을 벗어난 이해 관계로 역사가 외면 받는다면 정신세계의 후진성을 결코 면할 수 없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역사는 사람을 현명하게 하고 시는 지혜를 주고 수학은 배우는 이들을 섬세하게 만들고 과학은 심원한 사고를 갖게 한다"고 했다. 국사를 바로 세우고 학습하는 것은 베이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분명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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