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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건 - 평북노회] 기독교계 최초 신사참배 인정

73년전 한국 기독교계의 자존심이 일본에 무릎을 꿇었다. 1938년 2월9일 조선 개신교단 중 가장 교세가 강한 평북노회가 일본의 강압에 못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신사는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의 사원이다. 일본은 조선강점기에 '천황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신사에 강제로 참배하게 한 정책을 말한다. 특히 1930년 중국 대륙침략을 위해 조선의 사상통제 필요성이 제기되자 이를 지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일본은 중일전쟁 후 학교의 신사참배화에 성공하자 그 목표를 교회로 돌렸다. 1930년 중반부터 기독교계 지도대책을 수립해 지역 경찰력을 동원해 교회는 물론 노회.총회 등 교단적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1936년 5월 천주교가 신사참배를 용인했고 같은 해 안식교도 시작했다. 뒤이어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까지 신사참배를 결정했다.

외로이 저항하던 장로교 평북노회도 1938년 2월9일 결국 굴복했다. 이를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총회까지 장로교단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신사참배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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