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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이론으로 본 이집트…빵 한 조각이 국가 붕괴시킨다

[LA중앙일보] 발행 2011/02/09 미주판 30면 기사입력 2011/02/08 17:08

방글라데시도 빵 위기 - 높은 물가 등에 항의하는 총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7일 방글라데시 최대 야당인 민족주의자당(BNP) 시위대가 경찰차를 발로 차고있다. [본사전송]

방글라데시도 빵 위기 - 높은 물가 등에 항의하는 총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7일 방글라데시 최대 야당인 민족주의자당(BNP) 시위대가 경찰차를 발로 차고있다. [본사전송]

빵을 생명이라 부르는 나라 권력 공백에 취약한 이집트
국제 밀 가격 상승에 직격탄 시위 사태에 정부 제 기능 못해
식량 불안이 반정부 시위로 오히려 빵값 가파르게 올라


55일이ㅇ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 참가자 한 명이 시위대에게 지급된 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이 빵을 ‘아이시(생명)’라고 부른다.[본사전송]

55일이ㅇ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 참가자 한 명이 시위대에게 지급된 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이 빵을 ‘아이시(생명)’라고 부른다.[본사전송]

이집트인들에게 빵은 생명이다. '국민 음식'인 둥글넓적한 빵을 '아이시(Aysh.아랍어로 생명이란 뜻)'라고 부른다. 이름뿐 아니라 현실도 그렇다. 전체 가구의 90%가 정부가 보조하는 빵을 먹는다. 60%에겐 주식이다. 그 때문에 빵값이 조금만 올라도 격렬한 반응이 나온다. 1977년 정부가 빵을 포함한 주요 식료품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 폭동이 일어났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친 이 폭동을 서방 국가들은 '이집트 빵 폭동(Egyptian Bread Riots)'이라고 불렀다.

최근 이집트를 뒤흔들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도 빵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등 외신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독재에 대한 거부감 못지않게 빵값 인상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시민 봉기를 촉발시켰다고 분석했다.

8일(현지시간) 현재 이집트 시위 사태는 소강국면을 맞고 있다. 보름째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를 "이제 끝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뇌관'이 남아 있다. 바로 빵이다. 식량 사정이 악화될 경우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해 시위에 소극적이던 사람까지 거리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빵 만드는 밀 60%를 수입= 이집트의 빵값은 주재료인 밀의 국제 거래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국내 밀 수요의 60%를 해외에서 들여오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약 930만t을 수입했다. 세계 최대 규모다. 이집트 정부는 해마다 거액을 들여 밀 가격 변동의 충격을 흡수해 왔다. 민심을 좌우하는 빵값을 묶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이래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중국에 가뭄 호주에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공급량이 줄면서 국제시장의 밀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내 밀 가격은 전년 대비 30% 가까이 올랐다. 밀 가격 상승은 식량 수급에 대한 불안 무능한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를 낳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면서 정작 빵값이 올랐다는 점이다. 이집트 정부는 그간 빵값 안정화를 위해 보조금 지급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해 왔다. 수입 밀을 들여오는 항구 운영은 물론이고 수송 트럭 제분소 빵가게까지 직접 챙겼다. 반정부 시위 발발 후 이런 기능이 마비되자 빵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값싼 5피에스타(약 9원)짜리 빵은 시장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50피에스타짜리는 60피에스타에 팔리고 있다.

◇전체 시스템 붕괴할 수도= 현재까지 이집트의 시위 양상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는 '형제'들에 대한 폭력을 자제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식량 상황이 더 악화되면 시위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비폭력적인 민주화 시위가 격렬한 식량 폭동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는 최근 일본 투자은행인 노무라증권이 선정한 '식품가격 인상으로 국가 위기를 맞을 수 있는 나라' 6위에 꼽히기도 했다.

〈그래픽 참조〉

학계에선 한발 더 나아가 빵 문제가 이집트의 사회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저명한 복잡계 이론 연구기관인 미국 뉴잉글랜드복잡계연구소(NECSI)의 야니르 바-얌 소장은 최근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집트의 지배구조는 최상층부가 건재할 때만 유지된다"며 "권력 공백이 이어지면 전체 시스템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집트는 상호 맞물려 있는 경제 체제(interlocking economic system)다. 각 부문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고 상호의존적이다. 이런 조직은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쪽으로 쉽게 전파되는 특성이 있다. 바-얌은 또 이집트가 장기간의 독재 스트레스로 '자체 임계 상태(state of self-organized criticality)'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모래를 쌓아올려 만든 산이 마지막 모래 한 알에 한순간에 무너지듯 미미한 계기로도 격변에 휩싸일 수 있는 상태란 것이다.

캐나다 워털루대의 정치학자인 태드 호머-딕슨 교수도 같은 견해다. 그는 저서 『업사이드 오브 다운(Upside of Down.2006)』을 통해 "식량 부족이나 기아가 복잡한 근대 시스템에 파멸적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 학자다. 호머-딕슨은 "모든 건 최후의 상황을 맞기 전에 (이집트의) 각 시스템이 다시 정상 가동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복잡계(Complex System) 이론= 얼핏 작은 사건처럼 보이는 수많은 변수가 유기·복합적으로 작용해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보는 이론. 경제문제 등 세상의 질서를 개별 요소별로 단순화해 분석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자연·사회과학의 다양한 영역에 응용되고 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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