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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폴 게티 가문의 비극

김완신/논설실장

설날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과 미국에서 우울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가정과 관련된 사건들이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난달 14일 한국에서는 만삭의 의사부인이 한 오피스텔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남편은 아내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숨졌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사인이 목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며 혈흔에서 남편의 DN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남편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법원에 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되면서 사건은 미스터리로 빠져들고 있다.

또한 중견기업의 맏며느리가 경영권 분쟁을 하고 있는 남편을 위해 시댁 식구의 불륜 사실을 캐내려다가 발각돼 체포됐다. 며느리는 은행 직원과 공모해 시어머니 등의 시댁 식구 예금잔액 정보를 무단으로 빼내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지난 7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폴 게티 3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게티 뮤지엄의 창설자인 폴 게티의 손자인 폴 게티 3세는 1973년 16살의 나이에 로마에서 마피아에 의해 납치됐다. 당시 마피아는 30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했지만 거부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돈이 없다며 거절했다. 납치범들은 잘린 귀와 머리카락을 게티 가문에 보내 협박했고 결국 몸값을 치러야만 했다. 인질범들이 요구한 돈은 할아버지가 220만달러를 내고 80만달러를 아들에게 이자를 붙여 빌려주는 방식으로 마련됐었다.



거대 석유 사업체를 운영했던 조지 프랭클린 게티의 아들로 태어난 폴 게티 1세는 주식투자와 오일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 1950년대 세계적인 부호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손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재물에 대한 탐욕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저택을 찾는 손님들이 사용하는 전화요금이 아까워 공중전화를 설치했고 자식들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예술품 수집에는 광적인 집착을 보였다.

납치된 지 수개월이 지나 할아버지의 생일에 폴 게티 3세는 풀려났다. 그러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약물에 빠졌고 1981년 약물중독으로 신체의 일부분이 마비되고 거의 앞을 못보는 역경의 생을 살다가 지난 5일 영국에서 54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가족의 울타리는 인간이 만든 어떠한 것보다도 견고하다. 울타리 밖의 세상이 아무리 거칠고 험해도 그 안에는 행복이 존재하고 휴식이 있다. 그러나 가족의 가치가 추락하면서 행복해야 할 가정이 사건의 현장이 되고 물질의 탐욕 앞에서 가족의 존재가 희미해지기도 한다.

부처의 말을 가장 충실히 보존하고 있는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는 가정을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이것이 바로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섬김' '사랑' '보호'는 가정을 이루는 근간이고 욕심과 이기심이 없는 순수한 마음에서 가정은 출발한다.

삶이 각박해지면서 가정도 위기를 맞고 있다. 가장 안정되고 결속력 있는 사회 기초단위로 여겨졌던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가정이 바로 세워졌을 때에는 행복의 원천이 되지만 무너지게 되면 영국의 소설가 버틀러의 말처럼 다른 무엇보다도 더 큰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잃어도 가정이 이를 대신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가져도 가정의 불행을 보상할 수는 없다. 게티 뮤지엄은 LA문화의 상징으로 웨스트우드 산정에 우뚝 서 있다. 앞으로도 그곳을 찾겠지만 비극적인 가족사가 떠올라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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