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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 뉴스] 노조운동

라틴계 노동 운동가인 세자르 차베스(1927∼1993)의 탄생일이 캘리포니아에서 공휴일로 지정됐다. 지난 20일 데이비스 주지사의 서명으로 3월 21일을 ‘차베스의 날’로 정한 것이다.

차베스는 멕시칸 커뮤니티의 ‘마틴 루터 킹’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농장주의 임금착취에 비폭력 파업으로 맞서 농노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던 멕시칸 노동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줬다. 노동운동을 민권운동의 차원으로 까지 끌어올린게 바로 차베스다.

텍사스에선 이미 지난해 그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캘리포니아는 두번째다. 그가 태어난 애리조나에서도 공휴일 지정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어 몇년후면 ‘차베스의 날’이 연방 공휴일로 지정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노조 지도자의 탄생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차베스는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던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인도의 영웅 간디에게서 교훈을 얻었다. 바로 비폭력 파업이다.

아마 화물트럭 운전사 노조인 ‘팀스터’(Teamster)의 지미 호파와 비교돼 더욱 존경을 받게 됐지 않나 싶다. 권모술수와 폭력으로 노조를 이끌어 결국 마피아에게 살해당한 팀스터 회장이다.
무엇이 차베스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을까. 그의 비폭력주의와 케네디 가문과의 인연, 그리고 미국의 노동운동을 간추려 본다.

1968년 3월 로버트 케네디가 LA를 찾았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든 그는 표밭인 캘리포니아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다. 틈을 내 케네디는 차베스를 만났다. 당시 라틴계 표는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멕시칸 노조 지도자를 만나면 백인 유권자들로 부터 외면을 받기 십상이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케네디는 차베스를 찾은 것이다. 면담을 마치자 둘은 인근 성당에서 함께 미사 참례를 했다. 케네디는 차베스의 비폭력 주의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차베스의 별명은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의 노벨상 수상작품에 빗대어 지어낸 말이다. 1920년대 극심한 가뭄이 몰아 닥치자 오클라호마의 가난한 소작농들이 캘리포니아로 이주, 포도 농장에서 일하며 온갖 학대와 착취를 당한 과거를 그린 베스트셀러다.

60년대에도 멕시칸계 노동자들은 대부분 살리나스 등 캘리포니아의 포도농장에서 일했다. 임금은 시간당 1달러도 안돼 대부분 굶주림에 시달렸다. ‘분노의 포도’ 시절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68년엔 차베스의 정신적 지주나다름없었던 케네디와 킹 목사가 차례로 암살당한다.
그러나 케네디 가문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70년 그가 불법시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케네디의 미망인 에델 여사가 살리나스의 교도소로 그를 찾아왔다. 킹목사의 미망인도 참여한 가운데 대규모 촛불 침묵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 덕분에 석방된 차베스는 또다시 파업을 주도했다. 노조를 인정치 않는 포도 농장을 상대로 전국적인 보이콧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차베스의 ‘연합 농장근로자 노조’(UFW)는 비폭력 캠페인을 끝까지 지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의 목표는 인간다운 삶. UFW 덕분에 멕시칸계 노동자들은 비로소 굶주림과 착취에서 벗어나게 됐다.

차베스도 때로는 폭력의 유혹을 받았다. ‘팀스터’ 회장인 지미 호파가 음모와 폭력에 의존해 임금인상 합의를 이끌어내자 측근들로 부터 노조 운동 방법을 바꿀 것을 권유받은 것이다. 그러나 차베스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가장 진실된 용기와 가장 인간다운 힘은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 땅에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차베스가 유언처럼 남긴 유명한 말이다.


차베스의 삶

애리조나의 유마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10살때 부모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온 식구가 떠돌이 농장 일꾼이 된 것이다. 무려 36군데나 학교를 옮겨다녀 15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8학년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워낙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이어서 교실에서는 물론 심지어 운동장에서 스패니시를 써도 교사로 부터 손찌검을 당했다. 어찌보면 소설 ‘분노의 포도’ 주인공 조드와 비슷한 삶을 살았지 않나 싶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소 냉전시대가 열리자 차베스는 연방수사국(FBI)의 표적이 됐다. 정부가 노조 지도자들을 공산주의 동조자로 보고 뒷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이에 개의치 않고 노동 운동을 계속하는 한편 부인과 함께 야학을 세웠다. 멕시칸계 노동자들의 의식을 개혁하기 위해서였다.
농장 근로자들만을 위해 투쟁한 건 아니었다. 베트남 반전운동은 물론 흑인들의 시위에도 참여해 민권투쟁에도 앞장선 것이다.

그가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된 것은 단식 때문이었다. 1968년 25일간의 단식은 그를 명실상부한 노조 지도자로 부각시켰다. 로버트 케네디는 그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불렀을 정도였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 정부는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노조지도자에게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지미 호파

차베스와 거의 비슷한 때 활동한 노조 지도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트럭회사에 취업, 노조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33년 ‘팀스터’에 가입하고 나서 부터 그는 능력을 발휘, 파업의 명수로 떠올랐다. 1957년 회장에 취임한 그는 특히 강인하고 효과적인 협상수완으로 명성을 날렸다. 호파의 리더십으로 ‘팀스터’는 200만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파는 자신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으면 폭력배를 동원하거나 음모를 꾸몄다. 노조기금을 착복해 호화판 생활을 하기도 한 그는 1967년 부패혐의로 체포돼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연방교도소에 수감되고서도 그는 ‘팀스터’ 회장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닉슨의 사면으로 4년후 석방됐지만 75년 의문의 실종을 당해 지금까지 아무도 그의 생사를 모른다. FBI는 그가 마피아에 납치돼 살해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지난 96년에는 그의 아들 지미 호파 주니어가 ‘팀스터’ 회장에 당선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조 지도자 자리를 대물림한 것은 호파가 처음이다.


‘노동 기사의 등장

노조다운 노조가 결성된 건 1800년대말이다. ‘노동 기사’(Knights of Labor)라고 불렸던 단체가 처음이다. 시간당 임금제와 어린이 노동금지, 8시간 노동제를 내걸고 투쟁했다. 당시는 10시간 노동이 예사였다. 기업주의 착취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근로조건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여서 노동자들에게 노조 지도자는 ‘기사’나 다름없었다. 처음엔 봉제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호응이 커 곧 주요 업종을 모두 커버하는 전국 규모의 노조로 성장했다.

점차 세력이 커지나 ‘노동 기사’는 철도회사를 타깃으로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당시 ‘문어발 기업’으로 불렸던 철도회사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차례 폭력 사태가 벌어지자 정부가 군병력을 동원, 진압하는 바람에 ‘노동기사’는 얼마안가 붕괴되고 말았다.

당시는 철도 재벌뿐 아니라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석유왕’ 존 로크펠러가 미국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특히 카네기는 파업이 일어나자 주 방위군을 투입시키는 등 강경한 대응을 해 원성을 샀다.

노동자들은 이들 재벌을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고 불렀다. 약자의 돈을 빼앗아 귀족처럼 생활한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카네기는 그러나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이란 참회록을 남겼다. ‘부자는 자신의 돈을 사회에 환원할 책임이 있다’며 노동자를 수탈해 번 전 재산 3억5,000만달러를 몽땅 사회에 되돌려 준 것이다.


AFL-CIO의 탄생

‘노동 기사’가 부활된게 바로 ‘노동 총연맹’(AFL)이다. 1886년 생겨난 노조다. 주로 봉급생활자의 임금인상 투쟁이 목표였다.

반면 ‘산업별 회의’(CIO)는 1900년대초 자동차 산업의 붐으로 미국이 대량생산체계를 갖추자 발족된 단체다. 직능별로 노조가 조직돼 CIO를 이루게 된 것이다.

미국의 최대 노조인 두 조직이 통합된 건 1955년. AFL-CIO, 곧 ‘노동총연맹 산업별 회의’란 거대한 노조가 탄생한 것이다. ‘팀스터’를 포함한 미국의 거의 모든 노조는 AFL-CIO의 가맹단체로 되어있다.

미국의 노동사에 또다른 전기를 마련한 인물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명령으로 연방공무원도 노조 결성의 자유를 부여한 것이다. 경찰과 교사, 각 로컬 정부 공무원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바로 케네디의 이같은 행정명령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용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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