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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독재자들의 '스피치'

김완신/논설실장

지난 주말 열린 제8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톰 후퍼 감독의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가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감독상.각본상을 석권했다.

'킹스 스피치'는 말더듬이 영국왕 조지 6세가 언어장애를 극복하고 국민에게 친숙한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엮은 작품이다. 조지 5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원래 왕이 아니었지만 형인 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였던 윌리스 심슨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을 포기하면서 왕위를 계승했다.

말 더듬는 증세로 인해 조지 6세는 대중연설을 극도로 기피했었다. 호주 출신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지를 고용해 말더듬증 치료를 받았다. 영화에서 대국민 담화를 앞두고 극도의 공포증을 보이는 조지 6세에게 로지는 친구에게 말하듯 하라고 조언해 성공적으로 연설을 마칠 수 있었다. 그후 두 사람은 왕과 무명의 언어치료사라는 신분을 뛰어넘어 영원한 친구사이로 남았다. 조지 6세는 왕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연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민을 단결시키면서 나치 저항의 구심점이 됐다.

세계 역사를 보면 '스피치'를 잘했던 군주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다. 뛰어난 웅변술을 가진 그는 단순한 어휘와 과장된 궤변으로 독일인의 우월성과 민족주의를 호소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설득력없이 주장만 반복적으로 나열했지만 그의 연설은 독일인을 집단 최면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쿠바의 정치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도 오랜 시간 연설하기로 유명하다. 지난 1960년 유엔에서 그가 행했던 4시간29분의 연설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다. 심지어 1986년 아바나에서 열린 제3차 공산당 대회에서는 무려 7시간을 연설하는 기록을 남겼다.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연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군중 앞에서 외쳤던 그의 명연설이 49년이라는 장기통치를 가능하게 했던 원천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정부 민주화 시위로 국가위기에 처해있는 리비아에서는 지난 22일 카다피 국가원수가 75분간 연설을 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연단을 내리치면서 시위에 대한 무차별 보복을 선언했던 그의 대국민 연설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카다피의 국제 테러단체 배후 조정을 비난하면서 '중동의 미친 개'라고 표현했던 것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카다피도 장광설의 연설로 유명하다. 2009년 유엔총회장 연설에서는 제한시간 15분을 넘겨 90분 이상 열변을 토했다. 즉흥적으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연설이 길어지면서 아랍어 통역에 지친 통역사가 도중에 교체됐고 연설을 듣고 있던 참석자의 절반이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국가 통치자가 반드시 연설을 잘 할 필요는 없다. 연설에는 '권위'와 '진실'이 담겨야 한다. 달변의 '스피치'가 일시적으로 국민들을 열광시키고 여론을 호도할 수 있어도 진실이 없으면 허황된 언어 유희에 그치고 만다. 어눌한 말투로 국민의 진심에 호소했던 조지 6세의 연설은 전쟁의 격동 속에서 영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됐지만 독재자들의 '선동'은 그들의 몰락을 가져왔다.

독재자의 연설에는 국민을 위하는 진정성이 없고 망상만 존재한다. 망상은 그릇된 믿음을 뜻하지만 독재자에게는 그것이 현실처럼 생생하다는 것이 문제다.

말더듬이의 연설은 국민에게 단지 불편을 주지만 독재를 미화하고 선동하는 연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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