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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왜 그렇게 한국말이 서툴러요?"

[LA중앙일보] 발행 2011/03/07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1/03/06 17:04

안유회/특집부장

말은 필요하면 배우는 것, '한국말=한인 정체성'…무조건 재단은 무리
외국말 배우는 거. 힘들다. 그 스트레스는 이민자들이 잘 안다. 한 번 쯤 해봤을 것이다. "어휴~ 내가 영어만 잘 하면…."

남가주에 사는 16세 한인 소녀 메건 이 양이 MBC '위대한 탄생'에서 외국말(?) 못하는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이 양의 사연을 보도한 본지 4일자 기사를 보고 유튜브에 들어가 동영상을 봤다. 설움의 강도가 생각보다 강했다. 이 양의 노래에서 내내 문제가 된 것은 한국말이었다. 가사를 못 외우고 발음이 서툴다는 것이었다.

한 심사위원은 "(미국 오디션 심사 때) 가사를 다 공부해 진심으로 부르겠다고 약속했잖아요.…안 지키고 있어요"라고 이 양을 닦아세웠다. 이 양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어설픈 영어로 팝송을 불러본 이들은 안다. 가사가 혀끝에 녹지 않으면 노래 따라가기 바쁘다.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몰입이 안 되는데 듣는 심사위원의 마음이 움직일 리 없다. 가수가 하는 일이 가사 외우는 것이냐 나도 가사를 잊으면 허밍을 한다고 말하는 관대한 심사위원도 있었지만 위로가 안 됐다.

이 양의 동영상을 보면서 '한국말 스트레스'와 관련된 일화들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오래 전에 만났던 2세였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까지 한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부모는 성도 김씨를 골드(Gold)로 바꾸었다. 완전히 미국인으로 성장했다. 부모가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 고교 졸업 뒤에야 한인 또래들과 처음 만났다. "첫 만남부터 한인 또래들에게 무섭게 끌렸고 한국말도 놀랍게 늘었어요. 차에선 항상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를 듣는데 그 때마다 과속을 해 걱정이 돼요."

그 비슷한 시기에 들은 말이다. 한인 2세 한 명이 누구나 부러워할 유명 법률회사에 입사했다. 당당하게 출근한 첫날 회사측은 한국말은 당연히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국 시장을 맡겼다. 그리고 얼마 뒤 이 친구는 자살했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정체성 혼란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미국인'이라고 믿고 자란 이에게 한국말 때문에 뽑혔다는 사실은 엄청난 정신적 혼란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말 교육 안 시키는 부모가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모국어처럼 한국어를 구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양도 생각과 달리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극적 효과가 필요한 리얼리티 쇼의 특성상 이 양을 대하는 것이 더욱 거칠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체성을 찾는 방법이 꼭 한국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말을 못 한다고 서툴다고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말을 못 해도 굳건한 정체성을 갖고 있고 한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2세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90년대초 부모의 권유로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는 2세 대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에게 한국에 있는 한인 2세들 사이에 떠도는 괴담을 하나 들었다. 한 2세가 영어로 얘기하는데 누군가 "한국 사람이 영어로 얘기한다"며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얘기였다. 봉변을 당한 2세는 충격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 가지 가치로 모든 걸 재단하는 건 위험하다.

혹시 한국 방송 출연이 상처가 돼 한국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 양은 의외로 씩씩했다. "이제 엄마와 친구들과 최대한 한국말로 대화하겠다"고 했다. 사실 언어는 필요하면 배우는 것 아닌가.

그래도 부모들은 일단 한국말 교육을 시작했으면 아이들이 아무리 싫어해도 끝까지 가르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나중에 원망을 안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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