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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인 미술가들 (117)] 정물화의 현대적 변주로 생명의 가치 추구

꽃과 과일 등 그린 정물화 위에 튜브 등 조합
어릴 적 병원생활 체험 바탕 새로운 세계 개척

화가 박은정은 1963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홍익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해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한국 화단에 데뷔해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서 전세계에서 모여든 작가들과 함께 작품활동을 하면서 기존 작품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2009년 6월 뉴욕으로 왔다. 현재는 브루클린에 있는 덤보 아트스튜디에서 작품 제작에 몰입하고 있다.

최근 작품전으로는 지난해 1월 허친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올 1월에도 헌팅턴 피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피티갤러리 개인전은 생애 22번째 개인전이다. 또 올해 링컨센터 전시와 첼시 텐리갤러리를 작품전 등 뉴욕과 런던 등에서 계속해서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박씨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부실해 갖은 병치레와 사고로 자주 병원에서 지내면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병원에서 혼자 있으면서 외부세계에 직접 뛰어 들어 즐기질 못하기에 상상을 즐겼다. 창 밖에서 노는 친구들을 바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았는데 그런 삶 속에 유일한 기쁨은 그림 그리기였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박씨는 다수의 미술상을 탔고, 이로 인해 자신감과 기쁨을 얻는 순간들이 많아지면서 미술가로서의 인생을 살겠다는 꿈을 굳히게 됐다. 그렇다고 박씨가 처음부터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남에게 보여준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또 졸업해서도 작품을 꾸준히 했으나 부끄러움이 많아 전시 발표를 못하다가 어느 날 친구들의 강력한 권유로 그룹전에 참가한 뒤 화가는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전시할 때면 여전히 부끄럽기만 하다”고 털어 놓는다.

박씨는 정물화를 그린다. 좀 더 설명해서 말하자면 기존의 정물화에 현대적인 소재와 구성을 더해 현대적인 조형언어를 갖도록 만들어낸 현대적 의미의 정물화다. 그의 그림들은 먼저 정물을 소재로 일반 회화기법으로 그린 후에, 물이나 용액을 넣은 투명한 비닐 튜브 용기나 관(管)을 캔버스 표면에 감싸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 여러 가지 물을 담고 있는 튜브나 관을 통해 새롭게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바탕 그림에는 꽃과 과일 등을 포함해 다양한 소재가 그려진다. 이러한 바탕 그림은 그저 그 자체의 느낌으로 끝나지 않고 위에 설치해 놓은 투명한 비닐 튜브를 통해 빛으로 발산되고, 굴곡지고, 변화되면서 다양한 시각적 충격과 느낌을 준다.

박씨가 이러한 현대적 변주의 정물 그림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어린 시절 병원에서 자주 접한 의학 용기, 각종 색깔의 튜브를 통해 들여다 본 생명의 고귀함과 감동이다.

“나는 살아 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생명과 생존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고 있다. 나의 작품은 이미지보다 그림 위에 놓여진 오브제(튜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나에게는 시각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오브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 병치레와 사고로 인한 병원생활중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링거 주사를 맞으며 보았던 투명한 병 속의 여러 약물들로 인해 내 몸이 회복되고 다시 삶을 되찾게 되는 것에 대한 감사. 그 신비로운 능력을 느끼면서 약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고 지금 나는 나의 작품에 그 때 느끼고 간직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박씨의 작품에 대해서 미술평론가 고충환씨는 ‘오브제 회화, 정물화의 지평을 넘어’라는 작가론을 통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박은정의 화면은 정통적인 정물화에 대한 미술사적이고 인문학적인 맥락 속에서 읽힌다. 정물화의 전통을 자기화하면서 이를 현대적인 문법으로 각색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그림은 단순히 그림으로만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는 그림에다 사물을 도입했다는 점에선 일종의 오브제 회화로 범주화할 수 있으며, 평면이면서 동시에 입체를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선 일종의 저부조 회화로 볼 수도 있다. 그의 그림에서 튜브 관을 투과한 화면은 그 이미지가 굴절돼 보인다. 관이 가지고 있는 투명한 성질이나 두께,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물에 의해서 화면이 굴절돼 보이는 것이다. 마치 그 표면에 요철이 있는 간유리를 통해 사물을 보듯, 이미지의 실체가 모호해지면서 화면에다 특유의 후광을 부여한다.

소재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투명하고 가녀린 줄이 가로 지른 화면의 인상은 차양이나 발을 통해 자연을 음미했던 옛사람들의 미적 감수성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그림을 통해 박씨가 바라보는 지향점은 어디일까. 그가 그림을 통해 가고자 하는 곳은 어떤 모습일까. 박씨는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이렇게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지고의 미는 ‘걸림이 없는 순수’에 이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업은 모든 생명이 깃든 것에, 존귀함을 위해, 헌신적인 지고의 순수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탐구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나 다른 여러 작가들 모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 가야 할까 걱정하고 괴로워한다.

현실 문제와 작업에 대한 열정 때문에. 거대하고 척박한 사회 속에서 존립에 대한 흔들림으로 고통스러워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러나 우리 작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말고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작가를 작품과 떼어놓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해야 하므로.”

박종원 기자 jwpark88@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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