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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하나님의 나라, 귀신의 나라

김완신/논설실장

일본 대지진 참사에 세계가 애도하고 있다.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원전폭발로 방사능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각국에서는 긴급히 구조대를 파견했고 원조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이 깊은 슬픔에 잠긴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기독교 원로목사들의 발언으로 후폭풍이 일고 있다. 한 원로목사는 '이번 지진은 다신주의 국가인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했다. 또 다른 목사는 '일본은 예수 믿는 사람이 지극히 적고 수백만가지 귀신을 섬기는 나라'라며 '차기 지도자는 마귀 사상에 물들지 않은 건전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 정치인은 트위터에 '한반도를 안전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께 조상님께 감사드린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같은 발언들이 보도되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최악의 재앙에 처한 일본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240년이나 앞서 기독교가 전파됐지만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극소수다. 기독교가 초기에 전래된 후 일본은 한국보다 순교자를 더 많이 배출했고 기독교가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도 지대했었다. 그러나 쇄국정책을 고수했던 에도시대의 강력한 탄압을 거치면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급속히 줄어들었고 1859년 이후 미국 선교사들이 일본을 찾았지만 선교의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다.



300여년에 걸친 에도시대의 탄압은 일본 기독교가 뿌리내리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았고 일본의 범신론과 신도.신사 등의 조상숭배는 기독교의 성장을 저해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종교선택권을 철저히 봉쇄당한 일본인들을 '믿지 않아 심판 받았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이번 기독교 원로목사들의 발언에는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담겨 있다. 종교는 '이것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절대성이 없으면 성립하지 못한다. 절대성 자체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지만 이것이 타종교에 대한 우월감과 배타의식으로 표출돼서는 안된다.

오래 전 한 목사에게 '기독교는 왜 배타적인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목사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무속에 바탕을 둔 원시종교가 민중을 혹세무민했기 때문에 '우월적인 배타성'이 필요했지만 고등종교가 융성한 시대에 이같은 배타성을 여전히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었다.

기독교를 믿는 국민은 축복을 받고 기독교를 믿지 않는 국민은 재앙을 받는다는 생각은 종교 이기주의일 뿐이다. 이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조차도 공감을 주지 못한다. 참된 종교는 배타적인 이기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타주의를 사회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종교학자 최준식 교수는 한국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한 배려와 존경심이 부족한 것은 영성의 빈약에서 온다고 지적하기도했다.

종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에서 출발한다. 감내하기 힘든 일본의 대재앙을 두고 하나님의 심판이나 귀신의 나라 운운하는 것은 참된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종교는 이성이 아닌 신념의 영역에 존재하지만 맹목적인 신념이 균형을 상실하고 불관용과 편협으로 치달으면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성숙한 종교는 결코 이성을 마비시키지 않는다.

지금 일본인들은 슬픔에 잠겨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그들을 비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대에 임의로 세우는 '특권'이 기독교인에게는 없다.

나의 종교는 기독교이고 기독교인의 '특권'인 기도로 간절히 염원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고통받는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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