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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지진기록의 정치학과 천명

[LA중앙일보] 발행 2011/03/21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1/03/20 18:51

안유회 / 특집부장

지진 예측하려 했던 인간 노력
언제나 무력한 실패로 끝나
초자연에 대한 두려움 일깨워


지진을 가장 꼼꼼하게 기록한 나라를 꼽으라면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 지진 기록은 삼국사기 100여 건 고려사 190여 건 조선왕조실록 2000 건에 이른다. 지진 기록에 공을 들였던 이유는 그 정치적 함의 때문이다.

고려사에서는 아예 지진이 천문현상의 기록인 '오행지'가 아닌 왕실의 정치를 기록한 '세가'에 실려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지진은 자연과학보다 정치학이었다.

지진은 지금도 정치적이지만 근대 이전엔 흔히 천명이 바뀌는 징후로 해석됐다. 정권이 바뀌는 역성혁명의 징후였다.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명이란 결국 민심의 향방이었을 것이다.

이제 지진을 정권 교체의 징후로 해석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명을 자연계의 어떤 거대한 흐름으로 본다면 그 개념은 아직 유효한 것 같다.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의 가공할 파괴력을 보며 천명이 떠올랐다. 인도네시아와 아이티에 이은 규모 9.0의 일본 지진은 자연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용틀임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인간의 역사는 한편으론 불규칙적인 혼돈의 세계에서 규칙적인 질서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는 세계는 공포로 가득할 것이다. 성경의 한 구절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는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의지와 질서가 있다는 믿음이다.

당연히 지진 연구의 가장 큰 목표는 예측이다.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다. 대지진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지진을 예측 가능한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인간의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번 일본 지진은 다시 한 번 그것이 얼마나 미약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자연이 우연과 돌발인지 필연과 질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지진은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자연계라는 거대한 에코 시스템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시스템으로 자연의 상당 부분을 제어하고 있는 일상을 살면서 수시로 잊고 있는 사실이다.

자연은 때로 인간이 세운 가장 높은 단계의 시스템인 국가나 문명 자체를 한 순간에 지상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애틀랜티스 대륙이 지진으로 침몰했다거나 발해가 백두산 폭발로 멸망했다는 설은 그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사실 전문가들은 올해 일본에 이 정도 지진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 했다. 지진 규모가 8.9에서 9.0으로 상향 조정되고 10m로 발표됐던 쓰나미의 파고가 15~20m로 수정된 것도 예상치 못했던 사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센다이 지역에서 2014~2017년 사이에 거대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었다. 지금도 이번 지진보다 더 강력한 지진이 올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일본 대지진 이전에도 2012년 지구멸망설 같은 자연계의 거대한 힘에 대한 두려움 섞인 예언이 날뛰었다. 지진 이후엔 이런 예언이 더 힘을 얻고 있다.

북한은 지난 17일 한국 기상청장 앞으로 백두산 화산 문제에 대해 협의하자고 제안하는 전통문을 보냈다. 일본 지진으로 백두산 화산 폭발설이 더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떤 지진보다 생생하게 기록된 일본 지진 영상에서 쓰나미는 한 마을을 단숨에 휩쓸어 버렸다. 집은 마치 종이배처럼 떠밀려 다녔다. 단 한 번 쓰나미에 처참한 인간은 참으로 무력했다. 그리고 자연은 무심했다. 그것이 원자력 발전소든 논과 밭이든 아이든 할아버지든 가리지 않았다.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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