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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카드·자동차만?…영어도 해야

이은미/미드웨스트대 TESOL 교수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20여 년 전 한국에서 어느 가족을 도와줬던 일이다.

동네 이웃이었던 그분은 내가 ‘영어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주 어렵게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동생이 미국 사람하고 결혼해서 미국에 갔는데 요새 전화도 안 오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동생네 집에 전화를 걸면 미국인 신랑이 전화를 받는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결국 내가 그 미국인과 통화해 이웃과 미국에 살고 있던 동생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전화 통화를 하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고맙다고 치하를 했다. 내게는 영어가 별것이 아니었지만 어느 가족에게 영어는 담벼락같이 아득한 장애물이었으리라.

대학원 재학 중에 부속학교의 ESOL 교사로 일을 했다. ESOL 교사의 역할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학교에서 영어 때문에 장애를 겪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고 영어도 가르쳐주는 것이다. 학생 중에는 미국 학교에 다닌 지 4년이 넘는 중국인 남매들도 있었다. 오누이가 하이스쿨 10학년들이었는데 오빠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힘들었고 누이동생은 그럭저럭 기초 의사소통이 되어서 둘이 힘겹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미국 공립학교 학생으로 여러 해를 보내면서도 기초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안 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지각 결석을 하지 않고 자리만 꼬박꼬박 지켜도 이를 존중해주는 편이다. 이렇게 그림자처럼 세월을 보내다 보면 학년은 올라가고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다.
한국계 이민자 가족 중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이 있다. 나는 종종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자녀의 학교와 관련된 도움을 요청받는 편이다. 가족 중에 영어 소통이 되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해서 학교에서 급한 일이 있을 때 내게로 연락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집은 이민온 지 수 십 년이 되었고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초적인 영어 소통이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은행카드와 자동차만 있으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은행카드로 물건 사고 차 끌고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살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이민 와서 고생해 식품점이나 식당, 세탁소 그 밖의 자기 사업을 일구고 자녀 교육도 성공적으로 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중·장년층 이민자중에서 ‘영어’를 아예 손에서 놓아 버리는 사례도 많이 보인다. 영어는 해도 늘지 않고 이제는 먹고 살 만하니까, 자식들도 다 잘 컸으니까, 더 이상 영어 신경 안 쓰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 땅에 살고 있는 한 영어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닥칠 수 있다. 영어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취직을 위해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 그럴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자유롭게 이웃과 친구 되기 위해서도 영어는 필요하다. 아주 사소한 전화 통화라도, 성장한 자식이나 혹은 영어 잘하는 이웃에게 의지하기보다 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기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영어 고민에서 해방되는 길은 영어책을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니고 영어를 익혀서 ‘정복’하는 것이리라.

봄이 왔다. 가을 추수를 위하여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으로 이제 다시 영어책을 찾아 들고 지역에서 운영하는 무료 영어 교실을 노크해 보심은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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