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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합격통보 못받은 수험생 부모에게

김석하/사회부장

# "동부쪽 물가가 비싸서 걱정이에요." "왜요 이사하시게요?" "아니요 우리 애가 그쪽 대학에 붙어서…."

이쯤 되면 금방 눈치를 챈다. 대화를 접고 싶지만 상대방의 의도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어느 대학인데요?" "OOO갔어요." "축하해요."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이 대화의 종결점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쪽 아이는요?" "아 OOOOO됐어요." 그리고는 "……"

요즘 이 1~2초의 짧은 단절이 싫어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다는 학부모들이 많다. 아이가 명문대학에 붙은 부모는 주변 상황을 기가 막히게 이용해 내 아이가 합격한 대학과 연결시키는 재주를 부린다.



# 같은 일에도 기술과 예술이 있다. 기술(기능)의 세계에서는 기존의 매뉴얼을 성실하게 배우는 것과 배운대로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실성과 책임감이 중요 가치다.

반면 예술의 세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자율적인 열정 속에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다. 창의력과 성취감에 모든 것을 건다. 둘은 상호보완적이고 때로 충돌한다. '등가(等價)'다.

"겉멋만 들어서 기본기 없이 폼 나는 일만 몰아치듯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기술세계 주장)

"열정도 없고 고민도 없이 습관적으로 일하는 것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예술세계 주장)

수준있는 식당 주방에서는 기술과 예술이 매일 충돌한다고 한다. 기본 맛을 지키려는 요리사와 다른 맛을 찾는 요리사들이다. 식당 주인은 양측의 주장에서 '평균'을 잡아주거나 한 쪽 손을 들어줘야 한다.

# '돈 버는 기계'가 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솔직히 별로 없다. 좋은 의도로 대화하겠다고 나서지만 일장 훈계에 잔소리로 끝마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화만 안 내도 다행이다. 반대로 무시당하는 경우도 잦다. 많은 학자들이 아버지가 좀 더 자녀들의 인생 방향을 잡아주고 친구 같아야 하고 교육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할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사실 그렇게 해도 문제다. 모든 것을 챙겨주고 이끌어주고 채찍질하는 아버지는 다른 말로 하면 엄격한 관리자다. '무서운 권위'만 남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일찍 죽어주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권위 부재가 자신을 키웠다고 했다.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선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일리도 있다.

# 대학입학만 놓고 보면 4월은 잔인한 달이 맞다. 원하던 대학으로 부터 합격통지서를 못받은 아이들이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다. 학업 성적과 합격.불합격은 기술의 세계다. 이 세계는 매일매일 지속성이 중요하며 그 결과가 현실로 나타난다. 따라서 '가끔 나타나는' 아버지로서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괜히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핀잔을 놓거나 책임소재를 찾으려고만 한다.

부모 특히 아버지는 이럴 때 예술세계 입장에 서야 한다. 거기에는 결과가 아닌 출발동력이 중요하다. 아버지들은 요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자녀들을 축하하는 심정으로 지켜봐야 한다. 조금 일찍 넘어져 조금 일찍 다치는 것은 행복의 디딤돌이라는 것을 기억에서 배운 그들이다.

아버지에게는 '예술적 무관심'이 필요하다. 주저앉은 아이에게 창조적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아이가 일어서려고 발에 힘을 모으는 순간까지만 힘을 보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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